(3)자원 전쟁의"최전방"…원시림에 힘찬 톱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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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글」속에서 애국가가 올려 퍼졌다. 새벽5시.
「정글」속「코리아·타운」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애국가가 4절까지 끝나자「스피커」에서는「서울의 찬가」「나의 조국」등 귀에 익은 노래소리가 원시림을 뚫고 계속 이어졌다.

<정글에 퍼지는「서울의 찬가」>
상오6시 도시락과 물병을 손에든「인도네시아」청년들이 운동장에 모인다. 6시15분. 각 작업반 별로 점호가 끝났다.
작업반장인 한국인 감독들이 사업소장에게 출석인원을 보고한 뒤 작업반 별로「트럭」에 탑승, 밀림으로 떠난다. 흡사 군부대 같았다.
이곳이「인도네시아」남부「칼리만탄」주「코타바루」군「바투리친」면「송아이아타」 이에서 북쪽으로 1백20km 떨어진「정글」속의「코리아·타운」이 있는 곳이다.
『「정글」속의 원목 벌채 현장은 바로「자원 전쟁」의 최전방입니다』「한국남방개발」 「바투리친」사업소 생산본부장 김세영씨(38)의 말이다.
수도「자카르타」에서「인도네시아」국내선 비행기를 타고「자바」해를 건너 1시간10분쯤 지나자「칼리만탄」도(옛「보르네오」섬) 남쪽「반자르마신」공항에 도착했다.
「반자르마신」은 남부「칼리만탄」의 주 수도.
「반자르마신」에서「한국 남방」이 원목 개발을 하고 있는「바투리친」에 가기 위해 20인승 경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 밖은 온통 초록빛이다. 수해였다.
「반자르마신」을 떠난 지 40분만에「코타바루」읍에 내렸다.
「코타바루」에 도착, 그곳에서 다시「스피드·보트」를 타고 1시간 후에 도착한 곳이「송아이아타」이. 바로「코리아·타운」이 시작되는 곳이다.
「코리아·타운」에는 원목 하치장·제재소, 그리고「인도네시아」인들을 위해 지은 주택 4백여 채가 있다.
사무실 오른쪽에는 한국인 직원 숙소 30여 채와 식당·오락실·도서실·「테니스·코트」·어린이놀이터가 있다. 또 외국인「바이어」들을 위한 영빈관까지 마련해 놓았다.
밀림 속에 새로운 마을 하나를 건설한 것이다. 자가발전기를 가동해 전기 불을 켜고 있었고 상수도 시설까지 돼있었다.
무·배추·시금치·깻잎까지도 서울에서 종자를 갖고 와 이곳에서 50여m 떨어진 화전에서 자체생산, 매일 공급한다.
「인도네시아」에는 80년말 현재 우리교민 l천2백67명이 살고 있다. 교민 대부분은 이곳에 진출한 5개 산림개발 업체와 건설·무역·제조업체 등 44개 기업체의 임·직원과 그 가족들.

<자가 발전에 채소도 자급>
사업관계로 체류기간을 계속 연장, 10년 이상 이 나라에 머물고 있는 교민도 20명이 넘는다.
「송아이아타」리「코리아·타운」에서는 동짓날인 작년12월22일 한국인 식당에서 팥죽을 쑤어 동네잔치를 벌였다.
동짓날이자「한국 남방」이「인도네시아」에 진출한지 12년이래 가장 큰 나무를 벌채한 날이었다. 베어 낸 나무는 고급 가구재로 쓰이는 2백년생 거목「아가티스」(길이35m·직경2·52cm).
한 그루의 값은 현지 생산가격으로 따져 자그마치 l만여「달러」.
원시림을 벌채하는 과정은 엄청난 인내와 땀을 요구한다.
임지개발 허가를 받기 전에 우선 적지 선정을 위해「헬」기로 공중 촬영을 한다. 항공 촬영 자료를 판독한 후 기술자들은 직접「정글」속에 들어가「서베이」를 한다. 대개 탐사기간은 1개 지점(1만㏊)에 한달 이상 걸린다.
처음「정글」탐사에 참가했다가 작업을 끝내고 나와서 햇볕을 보고는 현기증을 일으켜 쓰러졌다는 박경하씨(28·고대 농대 출신)는 조사기간 중 위험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했다.
맹수나 독사와의 싸움은 물론 대들보 만한 썩은 나무가 공중에서 예고없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가끔 희생자도 생긴다고 한다.
「정글」속의 길은 생명선이다. 포장을 하지 않았으나 포장길과 다름없다. 한국인들이 「바투리친」일대에 개설한 도로만도 총 연장이 6백60여km. 한국인의 도로 닦는 기술은「인도네시아」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나라 제1호 고속도로인「자카르타」∼「보고르」간 54km를 우리 기술진이 개설했기 때문이다.

<동짓날엔 팥죽 잔치 벌여>
우리 나라의 20배나 되는 면적을 가진「인도네시아」는 국토의 63%가 원시림으로 덮여 있다.
「자원전쟁」시대에 콧대가 높아진 나라 중에「인도네시아」도 손꼽힌다.
석유·천연「가스」·원목·주석·석탄·구리·「니켈」등 각종 자원 부존량이 세계5위 권에 들고 있다.「인도네시아」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지 않는다. 이 나라 국민의 민족주의 의식은 날로 강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남방·경남기업·아주 임업·동화기업·한니 흥업 등 우리 나라 산림개발 업체가 허가 받은 원목벌채 면적은 1백15만㏊로 우리 나라 전체 임지의 절반이 넘는다.
70년 초까지만 해도 우리가 벌채한 원목의 1백%를 마음대로 처분해 왔으나 73년부터는 생산량의 40%범위 안에서 국내로 반입하거나 제3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또 수출 원목 가격의 20%를 세금으로 내야하는 등 조건이 점점 까다로와지고 있다.
「제2의 자원전쟁」터에서 땀 흘리는 한국인들은 급변하는 상황에 따라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원목벌채에서부터 목재가공·합판생산으로 서서히 작전을 바꾸고 있다.「정글」의「코리아·타운」은 이래서 날로 번창해 가고 있다. 글 김재봉 기자 사진 이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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