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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학 캠퍼스 화합은 되찾았지만…|교주-총장 배격회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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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주총장을 매도하고 족벌 경영체제를 규탄하면서 대학가를 격정과 혼돈의 소용들이 속으로 몰아쳤던 4, 5월의 한달. 열병을 앓던 사립대학들은 얼굴을 바꾸었다. 교주 총장이 없어졌고 족벌체제가 적어도 겉으로는 무너졌다.
경희대 조영식총장과 한양대 김련 전 총장, 세종대 주영하 학장이 학사 행정에서 손을 떼고 재단을 맡았다. 조선대는 박철웅 총장과 부인 정애리시씨의 재단 이사장 직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부부가 학교와 재단을 나눠 맡고 가족과 인척이 학교운영을 도맡아 대학을「안방기업」으로 주물러왔던 족벌체제가 형식적으로는 청산됐다.

<안방기업에 철퇴>
그러나 그때 목이 터져라고 학교측에 대들었던 학생들은 오늘의 학교현실에 만족도, 그날의 분노를 자위하려고도 않는다. 극한대립으로 아프게 사무쳤던 상처를 말하려는 사람은 없다. 학생들은 그때 그것을 겪어야할 발전적 진통으로 생각했고 교주총장과 주위의 학교당국자들은 피해야 할 전염병쯤으로 알았다.
문제는 정부가 개입하면서 실마리를 풀어갔다. 세종대 최옥자 대학원장이「시비」에 못 이겨 자리를 물러났고 조 총장의 부인 오정명씨가 경희대 이사장직을 오천석 전 문교부장관에게, 김 총장의 부인 백경순씨가 전 이화학당 이사장 신봉조씨에게 한양대 이사장직을 넘겨 부부 총장-이사장이 자취를 감췄다.
조 총장과 김 총장, 세종대 주영하 학장이 총·학장직을 안치열·이병희·김준섭씨에게 각각 넘겨 준 것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8월 중순.
이들 세 사람은 나란히 총·학장직을 물러나면서 똑같이 재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지금 조영식씨는 아직 맡고 있는 세계대학총장회의 일 때문에 미국에 가있고 김련준씨는 한양대부속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주영하·최옥자씨는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있다.
조 전 총장의 2남 조인원씨(26)는 경희대 재단 이사직에서 떠났고 주영하 전 학장의 장남 주명건씨는 세종대에 그대로 남아 기획처장겸직을 해체한 채 경영대학원장만 유임. 장녀 경란, 2녀 경은씨는 모두 교수직을 떠났다.

<이사장실 새 단장>
교주가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들 대학들은 그 동안 유명무실하던 이사장실을 총장실보다 격이 높게 꾸미고 있다. 경희대는 그 동안 재단회의실로 쓰던 본관2층의 널찍한 방을 이사장실로 개조하면서 비서실을 따로 만들었으며, 총장 보좌관실은 폐쇄해버렸다.
경희대 안치열총장은『조 이사장과는 40년을 사귄 지기다. 서로의 표정만 봐도 심층을 파악할 수 있다. 총장을 인수받으며 학교내외에 팽배한 불신제거가 가장 시급하다는 얘기를 하고 조 이사장과는「유리창 행정」을 하기로 다짐했다』고 교주와의 관계를 밝히면서『총장과 재단이사장관계는 지시를 받고 지시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의하고 믿는 관계』라고 규정했다.
한양대 이병희총장은『문교부의 지시에 따라 이미 교수와 학 처장으로 구성된 대학 재무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히고『그러나 재정문제는 김련전 이사장에게 기댈수 밖에 없을것』이라고 말했다. 재단 이사장으로 물러앉은 전교주 총장 김련준씨와의 관계를 이 총장은 『이사장과 총장은 수레의 두 바퀴라 생각한다. 이사장과 합의해서 앞으로 대학을 운영해가겠다』고 했다.
한양대와 세종대도 이사장실을 새로 물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대는 또 농성기간 중 학생들이 끈질지게 교육시설화를 요구해온 학교구내의 주영하씨 사택을 기획처의 사무실용으로 내놓고 주 학장은 지난11월 시내「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한다. 사립대학의 교주족벌시비결과는 내년 새 학기면 이보다 훨씬 더 달라지게 된다.
정부가 지난 4, 5월의 진통을 거울삼아 마련, 입법회의에 넘긴 사립학교 법 개정안은 교주가 대학을 사기업처럼 생각할 수 있는 소지를 제도상으로 막고 있다. 교주는 물론 직계 존·비속과 가까운 처족까지도 총·학장을 맡지 못하도록 했다. 내년 초 개정교육법이 확정되는 대로 문교부는 부령 등을 통해·학교의 재정운영·교수의 인사권 등을 재단으로부터 전체교수에게 넘겨 줄 계획이다.

<사저가 사무실로>
이에 앞서 지난19일 문교부는 교수임명을 위한 인사위원회와 대학의 재정운영권을 맡을 대학재무위원회를 내년 새학기까지 구성토록 이들 학교를 포함한 전국의 사립학교에 지시했다. 청강생제도를 없애고 편입학도 일정기간 공개시험을 치르도록 했으며 공인회계사를 재단에 두도록 했다.『문제는 사람이다. 제도만으로 사학의 비리를 막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이사장으로 물러앉아 총장을 조종하고 교수들에게 군림할 때 어떻게 제도로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문교부관계자는 말했다.
그렇지만 허허벌판에 웅장한「캠퍼스」를 이룩하기까지 30여년 간 몸바쳐 온 대학설립자들의 공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많다. 사태당시 김옥길 문교부장관도『그분들의 공로는 인정해야한다』고 말했다. 밤12시가 가깝도록「캠퍼스」에 머물면서 벽돌하나의 색깔에서 나무한 포기, 풀 하나까지 아끼고 기르는 설립자의 노력을 외면하는 것이 반드시 학교발전을 위한 것이겠느냐는 논리다.

<합리·상식 찾아야>
또 실질적으로 교주를 학교운영에서 완전히 배제시킬 경우 거대해진 대학을 발전적으로 끌어나갈 수 있는 총장이 얼마나 있을지.
파동을 주도했던 몇몇 학생들이·제적·입대 등으로 학원을 떠난 뒤 그때 원색의 격문이 난무하던 그 자리에서 만난 학생들은 좀처럼 입을 열려하지 않았다고 한양대 권훈군(어문계열1년)은『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새삼 요구를 내걸고 싶지도 않다』면서 입을 다물었다.
1백80일의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방학을 잃은 학생과 교수들은 어떻게든 한해를 정리하며 혹한의「캠퍼스」를 지키고 있다.
거의 10년마다 한번씩 홍역을 치르면서 남다른 반성의 기회를 갖고도 다시 곪아터지곤 하는 이들 사학의 교주들은 저들 학생과 끝까지 평행선 이어야할까. 합리와 상식만 찾으면 해답은 스스로 나온다는 게 대학내외의 공통된 의견이다. <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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