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야당은 7·30 민심 벌써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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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특별법의 여야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국회의 법안 처리가 다시 막혔다. 정부가 시급한 처리를 요청한 경제활성화·민생·서비스산업 발전·정부조직 개편 등에 관련된 법안 수십 개가 정체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법과 이들 법안의 분리 처리를 주장하나 야당은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국회법에 따라 야당의 동의 없이는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다. 법안뿐 아니라 1차 국정감사 등 다른 사안들도 차질이 우려된다.

  노조가 파업을 활용하듯 야당이 정국현안과 법안 통과를 연계시키는 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야당은 적잖은 경우에 명분과 논리가 약한데도 법안의 발목을 잡곤 했다. 이번 세월호 사태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야당은 원내대표를 통해 상설특별검사법에 따라 특검을 정해 세월호 사태를 조사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런 합의는 당내 강경파와 ‘외부 개입세력’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원탁회의’로 불리는 원로들과 운동가를 포함한 외부세력의 압력은 당내 강경파를 밀고 박영선 원내대표를 포함한 ‘합의 수용파’를 코너로 몰았다.

 이번 사태는 세월호를 넘어 정국 운영에 대한 야당의 자세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야당은 비(非)현실적인 이념이나 명분에 사로잡혀 투쟁 일변도로 치닫곤 한다. 이명박 정권 때 야당은 광우병 파동에 휩쓸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재협상을 요구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자신들의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한 것인데도 야당은 재협상을 고집했다. 쇠고기나 FTA 협상은 나중에 합리적이고 국익에 도움이 된 것으로 입증됐다. 결국 ‘재협상 강경투쟁’은 야당이 대선에서 실패하는 데에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세월호 사태는 검찰의 수사, 감사원의 감사, 국회의 국정조사라는 많은 절차를 거치고 있다. 미진한 부분은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검으로 규명하고 국가는 보다 중요한 재발방지책에 주력하는 게 정도(正道)다. 7·30 재·보선에서 세월호 사태를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삼았던 새정치연합이 참패했다. 7·30 민심은 세월호를 합리적으로 마무리하고 경제 살리기와 국가개조에 매진하라는 뜻이었다.

  선거 직후에는 새정치연합 내에서도 이런 민심을 읽고 당이 변화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비등했다. 그래서 박영선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 체제도 구성됐다. 비대위원장의 첫 작품이 세월호 특별법 합의였다. 그런데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아 민심에 대한 인식은 사그라지고 당은 다시 과거의 강경 정치투쟁으로 돌아가고 있다. 야당은 향후 20개월 동안 선거가 없다고 안심할지 모르지만 이는 유권자의 기억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합의를 뒤엎는 ‘재협상 투쟁’이 과거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야당은 기억해야 한다. 7·30 선거 참패 후 바꿔야겠다고 이를 악물었으면 야당은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