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칼럼] 한국 국민에 告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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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807년 요한 피히테는 나폴레옹이 점령한 독일의 베를린 아카데미에서 '독일 국민에 고함'이라는 열혈 강연을 토했다. 뒤이어 그는 베를린대학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다.

동독 시절 훔볼트대학으로 개명한 이 대학의 위르겐 믈뤼넥 총장과 전임 한스 마이어 총장은 2003년 4월 국제한민족재단이 주최한 제4회 세계한민족포럼에서 '한국 국민에 고함'을 전했다.

나폴레옹 아닌 부시-블레어의 군대가 바그다드를 공격하고, 훔볼트대학 대신 베를린자유대학이 무대라는 점이 다르기는 했다. 포럼의 후반 일정은 훔볼트대학으로 옮겨 기어이 피히테의 애국 자취를 더듬었다.

*** 국가.제도 통합 앞서 감정통합을

회의 나흘 동안 독일측 연사들은 그들의 통일 교훈을 적극적으로 팔려고 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 참석자들은 열심히 '통일 노하우'를 사려고 했다. 그래서 통일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느니, 통일은 말 대신 마음으로 하라느니 식의 선문답이 오갔다.

그 '마음'이란 화두를 놓고 일례로 빌리 브란트가 추구한 동방 정책(Ostpolitik)의 요체가 바로 국가와 제도 통합 이전에 인민의 감정 통합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따위의 갈등은 학자와 정객이 자의로 갈라놓은 인위적 대립의 산물이기 쉬우며, 인민의 관심과 필요에서 그 분열은 부차적이라는 주장이 공감을 자아냈다.

그리고 돈이었다. 89년 1월 동독 공산당의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은 베를린장벽 설치의 근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장벽은 1백년도 더 존재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해 11월 9일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동독 주민들은 국가로서 동독(DDR)의 존속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달 20일 동독 붕괴의 진앙이었던 라이프치히 시위에서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란 구호가 울려 퍼지면서 통일은 현실로 다가섰다. 그것은 하나의 민족으로 동독 주민도 서독만큼 잘살 권리가 있다는 권리 선언이었다.

시위대는 "서독 마르크가 동독으로 오면 집에 있겠지만,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서독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휘갈긴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마음이 열리면 지갑도 열리므로 마음부터 열라는 저들의 충고는 백번 옳다. 통독 과정에도 비밀 거래가 있었는지, 그때 언론은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이 기어코(!) 터져 나왔다.

답변에 나선 독일인 교수는 비밀 지원은 있었으며, 그때마다 정치범 석방이나 동-서독 철도 부설 같이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식의 '공정한 거래'가 이뤄졌다고 했다. 서독 언론이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후적으로 양해한(?)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통일은 법적으로 동독 지역 5개 주를 서독 헌법이 관할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식 문서에는 과거의 서독과 동독이 각기 구연방 주와 신연방 주로 표기된다.

이 '흡수 통일'이 서독에 엄청난 부담을 지웠는데 계약에 의한 통일이면 계약 조건만 이행하면 그만이나, 상대를 흡수한 결과 이후의 모든 사태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통일부터 13년이 지나고 매년 8백억유로가 신연방 재건에 들어갔으나 지역 주민의 75%는 여전히 구연방에 열등감을 느낀다고 했다. 두 지역의 실업률은 8.8%와 19.5%로서 10년 전의 9.2%와 16.0%보다도 차이가 더 커졌다.

예전에는 동물원에 갇힌 듯했으나 통일 이후 정글에 내몰린 느낌이라는 신연방 주민의 술회는 대체로 사실이리라. 구연방 주민은 복지 후퇴에의 불만으로, 신연방 주민은 신속한 재건에 대한 기대 상실로 통일의 제2 주역-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제1 주역이란다-헬무트 콜 총리는 퇴진해야 했다.

*** 독일 통일후 고통은 있었지만

통독에 따르는 이런 고통 호소가 내게는 배부른 자의 과식 경고로 들렸다. 소화 불량보다 더한 고통일지라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고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기 때문이다.

종업원 1천4백만명의 '부실 기업'을 인수했다는 야유가 서독 일각에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통독을 '동독 민주화 혁명의 완성'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었다.

북한 주민도 한 민족으로 남한만큼 잘살 권리가 있으며, 그래서 남한이 북한을 돕는 것은 유세가 아니라 의무라는 독일 학자들의 권고에 내심 크게 당황하고 크게 부끄러웠다.

남의 나라 얘기에 가슴이 뭉클하다가도 북한-미국-중국의 베이징(北京) 북핵 회담에 남한이 빠진 서글픈 '민족 공조' 현실에 그만 맥이 풀렸다.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