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강조한 피셔 … 미 금리 조기 인상설 차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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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른바 ‘Fed(연방준비제도) 컨센서스’가 11일(현지시간) 확인됐다. Fed 2인자인 스탠리 피셔(71) 부의장과 1인자인 재닛 옐런(68) 의장의 경기 진단과 처방이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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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셔는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경제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했다. 연설문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았다. 제목은 ‘지속하는 대침체(Great Recession: moving ahead)’.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대비해 현재의 경기 상황을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침체 여파로 미국 총생산 실적이 실망스럽다”며 “성장을 회복하는 게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첫 번째이자 기본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옐런이 올 2월 취임 이후 줄곧 해왔던 경기 부양책이 지속돼야 한다는 메시지와 뜻을 같이 한다는 의미다.

 피셔는 옐런이 중시하는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노령화 탓이기도 하지만 2000년 이후 일자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의 비율(노동시장 참여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며 “이는 미국 경제 성장에 우환덩어리”라고 말했다.

 미 국채 전문 자산운용사인 핌코의 자산운용책임자인 빌 그로스는 트위터를 통해“피셔의 연설은 옐런의 말을 되풀이 한 것”이라며 “두 사람이 똑같은 비둘기란 게 드러났다”고 평했다.

 옐런은 강력한 원군을 얻었다. 피셔의 존재감에 비추면 더욱 그렇다. 피셔는 중앙은행가들 세계에서 스승으로 통한다. 벤 버냉키 전 Fed 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논문 지도 등을 담당했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주택거품을 해결했다.

 이런 피셔가 지난해 12월 Fed 의장이 아닌 부의장에 지명되면서 옐런은 자신보다 지명도가 높은 인물을 부의장으로 거느리는 부담을 안게 됐다.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3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두 사람 모두 노련하다”며 “갈등이 외부에 알려지도록 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이날 피셔의 연설은 갈등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수준을 넘어 문제 인식과 처방이 옐런과 같음을 분명히 했다.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올 들어 Fed 내 의견 불일치는 한결 심각해졌다. 블룸버그 통신이 최근 “전통적인 매파와 비둘기파의 논쟁이 아니라 새로운 전선이 Fed 내부에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바로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자는 쪽(매파+일부 비둘기)과 예정대로 양적 완화(QE)를 마친 이후 상당 기간 지켜본 뒤 하자는 쪽이다.

 피셔는 매파는 아니지만 선제 대응을 중시하는 쪽이다. 그가 올 1월 부의장에 지명된 뒤 Fed의 선제 대응론자들이 힘을 얻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게다가 올 2분기 미 성장률이 예상보다 훨씬 높은 4%(연율)에 달했다. 이 때문에 로이터 등 언론들은 “Fed가 내년 초에 긴축을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때 피셔가 옐런의 편에 섰다. 미 경제가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옐런의 시나리오대로 Fed가 금리를 조정할 것이란 예측이 힘을 얻게 됐다. ‘QE가 끝난 뒤 상당 기간 경제를 지켜본 뒤(내년 중순 이후)’에 기준금리를 올린다는 각본이다.

강남규 기자

◆스탠리 피셔=1943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태어나 짐바브웨이서 성장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미국 국적이 있다. 젊은 시절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MIT대 교수 등을 거쳐 세계은행(WB)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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