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들 책임감이 희생을 줄였다"|"승객 놔두고 나만 살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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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실수도 컸지만 책임감도 강했다.
우리나라 민항 사상 가장 큰 사고인데도 비교적 희생자가 적었던 것은 기장 양창모씨를 비롯, 승무원6명이 목숨을 걸고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에서 승객은2백6명중 8명(4%)이 숨진데 비해 승무원은 20명 가운데 6명(30%)이나 숨져 승무원들이 자신들보다 승객들의 안전에 더 힘썼음을 뒷받침하고있다.
순직한 승무원 중「홍콩」출신 「스튜어디스」「레베카·손」양 등 3명의「스튜어디스」는 마지막까지 기체에 남아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승무원들의 구조작업을 지휘한 사무장 김형구씨(33)에 따르면 「레베카」양은오른쪽 두 번째 비상구 앞에서 밀고당기는 승객들에 대해『진정하십시오.1명씩 차례로 내려야합니다』며 승객들을 정리하다 승객들에 밀려 쓰러져 숨졌고 일등석인 2층 객석에 있던 이정련양과 강선혜양은 승객들을 모두 내려보낸 뒤 1층으로 내려오다 「가스」에 질식, 숨졌다는 것이다.
기체가 불타는 최후순간까지 맨 앞쪽 비상구에 서서 동료들과 함께 구조작업을 펴다 승객들에 밀려 밖으로 떨어져 구조된 승무원 김경희양(25·서울암사동425)은 병원에서 『나만 살면 뭐하겠느냐』며 『다른 동료들과 함께 죽지 못한게 한스럽다』고 울먹었다.
기체에 불이 불자 왼쪽날개 위 비상구 근처에 있던 보안관 서정묵씨(3O·서울등촌동365의50)는 재빨리 비상구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기체의 손상으로 문이 열리지 않아 승객들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려고 노력했으나 자동적으로 펼쳐지도록 돼있는 비장탈출미끄럼대가 나오지 않았다.
승객들이 겁이나 머뭇거리자 서씨는 『괜찮으니 차례로 뛰어내리라』며 1명씩 붙잡아 높이 10m아래로 한사람씩 뛰어 내리도록 도왔다.
기장 양씨와 부기장 문상진씨·항공기관사 김세영씨의 죽음은 「실수」에 대한 책임을 죽음으로 대신한 장렬한 순직이었다.
비번으로 「앵커리지」에서 사고기의 1등 석을 탔다가 마지막 순간에 탈출한 동료조종사 김호준씨(47)는 사고가 나자 재빨리 2층 조종실에 올라가 『빨리 대피하자』고 소리쳤다.
그러나 양 기장은 조종간을 움켜쥔 채 조용히 앉아 『면목 없다. 기체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김씨는 옆에 앉아었던 부기장 문씨와 기관사 김씨에게도 재차 탈출을 권유했으나 이들도 역시『기장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며 끝까지 남아 애기 (애기)와 함께 순직했다.
착륙지점 왼쪽 20m떨어진 곳에는 배수로 낭떠러지가 있었으나 양 기장은 신중한 조종으로 이곳에 떨어져 전복되는 것을 모면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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