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재회의 꿈… 순식간에 산산조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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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참변은 순식간에 왔다. 16시간의 지루한 여행 끝에 아침잠을 깬 승객들은 창문아래로 서울상공을 내려다보며 2만5천리의 여정을 무사히 끝낸데 안도했다.
기체는 서서히 고도를 낮춰 하강하기 시작했고 승객들이 내릴 채비를 하며 술렁이는 순간 기내방송을 통해 무사비행을 알리던 여자승무원의 목소리가 갑자기 「톤」을 높였다.
『침착하십시오』 『침착하십시오』. 순간 기내는 걷잡을 수 없도록 아수라장이 됐다.
공포에 질린 승객들의 비명이 기내에 가득한 가운데 『쿵』하는 소리와 함께 2, 3분동안 동체가 끌리는 소리가 기내에 울려 퍼졌으며 이어 왼쪽 날개부분에서 연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사고순간>
맨앞쪽 비상구를 통해 탈출한 재미동포 윤흥섭씨(40· LA「산타나」)는 안내양의 착륙안내방송을 듣고 안전 「벨트」를 맨뒤 비행기가 하강하기시작, 거의 지면에 닿을 무렵 『쿵』하는 소리가 나고 동체가 끌리는 『쿵쿵쿵』하는 소리가 2분정도 잇달아 나 사고가 난 것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체내 「베니어」판과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왼쪽 날개부분에서 연기가 물컥물컥 안으로 들어오면서 기내는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때 『보안등을 터뜨려라』는 남자 목소리와 함께 보안관이 보안등을 터뜨렸으나 이때는 이미 연기가 기내에 꽉차 전혀 앞을 볼 수 없었다.
안내양이 안내방송을 통해 『침착하십시오』라고 몇차례 외쳤으나 이때는 이미 3곳의 비상구를 통해서로 먼저 나가려는 승객들 때문에 전혀 질서가 잡히지 않아 피해는 더욱 컸다.
오른쪽낱개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던 윤씨는 웃옷을 벗어 코를 막고 앞문으로 뛰어내려 상처 없이 나왔다. 승객 윤정균씨(40· 의료기사)에 따르면 김포공항상공에 이르렀을때 안전 「벨트」 틀매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10여분후 『쿵』하는 소리와 함께 활주로에 착륙하는 듯 했으나 별안간 기체가 요동을 치면서 상하로 20∼30회 가량 「바운딩」이 계속됐고 기내의 비명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비행기가 멈췄을때 기내는 정전이 되면서 새까만 「가스」가 뿜어나와 일부승객은 바로 질식해 버렸으며 이때 왼쪽의 비상구 3개가 열려 승객들은 비상구쪽으로 몰려나갔다. 사고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올때 지상 감시초소에서 이를 감시하고있던 윤경화씨(45· 감시원)는 사고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린 뒤 진입하는 동안 왼쪽 날개밑부분에서 갑자기 불꽃이 일면서 연기가 솟았으며 곧이어 비행기가 계류장부근에서 정지하면서 동체가 화염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현장>
공항대합실에는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나온 승객가족 5백여명이 몰려 발을 굴렀으며, 사고현장에는 서정화 내무장관과 유흥수 치안본부장이 나와 진화와 구조작업을 지휘했다.
불이 나자 승객과 승무원등은 비상구를 통해 빠져나와 긴급 구조됐다.
이중 윤홍균씨(30)· 노명숙씨(31·여)등 4명은 공항앞 중앙의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뒤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다.
또 68명은 입국수속을 마치고 귀가했으며 탈출하는 동안 여권을 분실한 28명은 공항보세구역안에 대기중이다. 또 통과여각 1백22명은 통과여객 대합실에 보호중이다.
공항당국은 활주로에 있는 사고기가 치워질때까지 모든 국내외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시켰다. 사고기에는 저명인사가 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활주로의 중간부분에 주저앉은 사고비행기는 동체가운데를 중심으로 V자형으로 양쪽이 약간 내려앉았으며 불탄 동체 윗부분이 모두 떨어져나가 아랫부분만 남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구조경위>
사고가 나자 탈출하지 못한 조종사를 제외한 조종석승무원 3명이 왼편의「이스케이프· 슬라이더」3개를 펼쳐 일부는 탈출했으나 불이 붙은 오른쪽 비상구 3개는 열지 못해 사고가 컸다.
공항당국은 승객들이 기체에서 엉키고 실키며 굴러 떨어지는등 필사의 탈출을 해 나오자 공항구내병원으로 옮겨 응급조치후 경상을 입은 66명은 귀가시켰으며 16명은 「세브란스」병원에 옮겼다.
KAL보안관으로 탑승해 비행기앞쪽 승객석에 앉아있던 서정욱씨(30· 서울 등촌동 365의50)는 비행기중간부분에서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나 순간적으로 『죽었구나』하며 창밖을 보니 이미 기체에 불이 붙어있었다고 말했다.
비행기가 불이 붙은채 5백∼1㎞를 더 굴러가다 멈추자 서씨는 기체앞부분에 있는 비상구를 열었으나 탈출계단이 내려지지 않아 승객 10여명이 10여m아래로 그대로 뛰어내려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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