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제3부 한국의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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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20년대「바이마르」공화국은 극심한「인플레이션」에 휘말려 있었다. 시골에 편지한 장 보내려면 1천억「마르크」짜리 우표를 붙여야 했다. 이쯤 되면 경제부재의 상태나 다름없다.
결국 독일은 절망적인 혼란속에서「히틀러」를 반겨 맞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결과가「인플레이션」보다 더 무서운「나치즘」이었다는 사실은「아이러니컬」하다.
1차 대전 후「러시아」의 공산화를 불러들인 것도 결국은「인플레」로 인한 민생고가 근본원인이었다. 역시 일본의 혹독한 군국주의도 마찬가지였다.「인플레」의 가공스러운 폐해는 2차대전 후에도 세계 도처에서 나타났다.
대륙시절, 중국의 초「인플레」는 중공의 대륙 석권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남미 여러나라의 계절병과도 같은 정변도 예외없이「인플레」로 인한 경제혼란의 소산이었다.
근년엔「칠레」의「아옌데」정권(73년),「아르헨티나」의「폐론」정권이 붕괴된 것도「인플레」에서 그 원인을 찾고있다.「폐론」이 실각할 무렵인 76년「아르헨티나」의「인플레이션」율은 3백47%에 달했다.
아직도「아르헨티나」는「인플레」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가 1백40%, 올해는 간신히 1백%에 가까와졌다. 그러나 10만「폐소」, 천만「폐소」, 1백만「폐소」의 지폐가 예사로 쓰이고 있다.
이런「아르헨티나」에선 학교 선생들이 방과후면「택시」운전사의 부업전선으로 나가는 일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의 교육현실이 어떨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미국의「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프리드먼」박사는「인플레」를 『무서운 병마』에 비유했다.
사람으로부터 창의와 성실을 앗아가고 사회질서·생활양식·가치관을 모두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그 해독은 사회의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사회 부조리·부정부패 등은 경제가 안정되지 않은 나라에서 흔히 볼수 있는 현상이다. 신병현씨(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는「인플레」가 부정부패의 온상이라고까지 말했다.
「인플레」아래서는 성실과 근면보다는 요행과 투기가 오히려 더 많은 이득을 불러들인다. 불노 소득이 가능한 때문이다. 따라서「인플레」는 국민의 의식을 오염시켜 사회 전체를 멍들게 한다는 것이다. 한때「아파트」추첨이 우리 사회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주택난을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요행과 투기심의 상징이었다. 「인플레」는 으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기 마련이다.
「인플레」의 사회에선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 기업도, 가계도 준비성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합리적 사고와 합리적 항동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선『될대로 돼라』 는 자포자기의 풍조를 낳기 쉽다.
기업들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술 혁신이나 각고에 의한 창의적 이윤보다「인플레」에 편승한 투기이익을 더 추구하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이 근면과 성실의 미덕을 외면하고 기업이 창조적 개혁을 포기하는 사회는 이미 축은 사외나 다름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 가치의 안정이 곧 사회 안정의 기반인데,「인플레」로 돈 그 자체가 흔들리면 어떤 결과가 되겠는가』고 신병현 부총리의 반문이다.「인플레」의 또 다른 해독은 이른바「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다.「벨기에」「루벵」대「트리핀」교수는 바로 그런 현상을 가장 두려운 문제로 지적했다. 그런 예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절실하게 체험하는 일이다.
가령 집 없이 전세에 사는 사람과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격심한「인플레」아래서 1년쯤 지나보면 그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져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원리는 집뿐만 아니라 다른 재산에도 적용될 수 있다.「인플레」가「빈익빈 부익부」를 가속시킨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화폐가치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경제질서를 파괴하고 만다.
일본의 원로 경제학자이며 동경도지사를 역임했던「미노베」(미농부량길)박사는「인플레」를『괴도』에 비유하고 있다. 흔적도 없이 봉급 생활자의 월급을 털어 간다는 것이다. 이렇듯「인플레」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횡재에 가까운 이익을 보게 하며 많은 근로자나, 덜 가진 사람들에겐 오히려「마이너스」성장의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올해 우리나라의「인플레이션」율은 어렵지 않게 40%를 넘길 것으로 추산한다. 이쯤되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셈이다. 그 이상으로 「인플레」가 진행되면 경제회복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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