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 정치인의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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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앞으로 약8년간 정치활동이 금지될 인사 8백11명의 명단을 접하는 심정은 누구나 착잡할 것이다.
우리 헌정사상 네 번씩이나 소급 입법에 의해 정치활동을 규제하게된 불행한 현실을 생각해도 그렇고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인물들이 묶인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러나 불신 받던 지난날의 정치풍토는 쇄신하지 않으면 안되고 새로운 시대에 알맞는 새롭고도 건전한 정치풍토도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당위인 이상 이번 조치는 발전에 따르는 진통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날의 우리 정치풍토가 민주정치의 발전과 국리민복의 증진이란 본연의 임무와는 동떨어지게 부패·비리·권모술수·파쟁 등으로 얼룩졌고 그런 부정적 요소가 새 공화국에까지 온존돼 나갈 수 없음은 하나의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항상 앞 물결은 뒷물결에 밀리듯이 유통하고 참신한 인물의 정계진출을 열고 새로운 윤리에 따른 새로운 정치의 장을 펼친다는 데서 이번 조치의 긍정적 의의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또 대상자의 수도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많지만 전체 심사대상자 7천66명중 8백11명을 묶기로 한 것으로 보아 상국 역시 엄선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5세 이하의 젊은 세대나 정치활동이 어려운 연로한 인사를 제외한데서도 당국의 배려는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당국이 지적한대로 이번 변사에서는 본인에게 소명기의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규제대상자로부터 적격심판의 청구가 있을 경우 이를 성실·진지하게 검토·판정하는 노력이 요망된다. 전 국회의원의 경우 입법의원 등 공직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원을 묶었는데 물론 이들 모두가 공인으로서 직·간접의 책임이 없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개별적인 소명내용에 따라서는 선별구제의 여지도 상당히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본인의 해명이 정당할 경우 구제하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전 국회의원 뿐 아니라 대상자 누구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다. 과거의 바람직하지 못 했던 정치풍토는 이들 8백여명의 탓도 크겠지만 시대의 영향 또한 없지 않았다는 점도 참작됐으면 한다.
또 한때 비리에 관련됐더라도 이들이 가지고있는 역량이나 경험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활용될 기회를 주는 문제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런 점을 유의하여 당국이 적격심위 청구가 있으면 그야말로「신중하고 공정하게」간청해 주도록 당부코자 한다.
반면 규제대상자들도 이번 조치를 자기 정치생활을 결산해 보는 한 계기로 삼는게 좋겠다. 그리하여 새 공화국에서 또 한번 기여할 결의가 선다면 그것을 생활과 행동으로 보임으로써 앞으로 대통령에 의해 해금될 기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조치가 밝고 건전한 정치풍토로 가는 한 시련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형성될 새 정치 질서가 얼마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느냐에 따라 이번 조치에 대한 평가 역시 달라진다. 따라서 이번에 묶이지 않은 정치인 또는 정치 지망인사들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 윤리가 뭣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다짐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고 한다. 짧은 기간에 이번 작업을 해낸 정치 쇄신 위원회의 고충을 이해하면서 앞으로 있을 적격심판의 판정이 국민화합과 공정을 다같이 보강하는 방향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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