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포교자」는 0명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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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테헤란에서>
【본사 주영특파원 장두성】
○…4백명 정도의 남녀들이 몰려서 있는 장지 쪽으로 다가가면서 기자는「이란」식 장례식은 꽤 떠들썩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50대의 약간 뚱뚱한 남자가 둔덕에 올라서서 큰소리로 연설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 평상복 차림의 5명의 악대가 열심히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 멀리서 볼 때는 시장바닥 같기 때문이다.
악기 중에「트럼핏」과「드럼」이 포함되어 있어서 음악은 장송곡으로는 지나치게 경쾌한 가락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은 더 했다.

<처절한 상흔의 묘지>
그러나 사람들 가까이에 접근하면서 전혀 다른 광경이 전개되었다. 40개쯤 되는 묘혈이 2열로 정연하게 패어져 있는 옆에서 검은「차도르」를 입은 여인들이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여인, 혼자 돌아앉아 손가락으로 자갈을 토닥거리는 여인, 사람들이 몰려선 주위를 조용히 서성거리는 여인 등등 모두가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창피스럽다는 듯 그들은 서로가 애써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면서 전사한 연인과 남편의 영전에 마지막 눈물을 보이고 있었고 옆의 소란스러운 연설과 음악은 그런 은밀한 슬픔의 표시를 감추어 주고 있는 듯하다.
「테헤란」남쪽 20km지점에 위치한「베헤슈티·자헤라」공동묘지.「테헤란」의 번화가에서 느낄 수 없었던 전쟁의 가장 처절한 장면이 건사자의 유해를 기다리고 있는 그 소란과, 억압된 슬픔의 대조 속에서 강렬한 비극의 분위기를 확산하고 있었다.

<묘석 위에 물 부어>
부근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무덤 주위에 가족들이 몰려 앉아 묘석 위에 물을 붓고 있는 모습이 여럿 보였다.「이란」식에 따르면 묘석은 묘위에 눕혀 놓는데 그 위에 물을 붓는 것은 지하의 영혼에게 산사람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라고 한다.
○…공동묘지를 돌아보고 오는 길에 여러대의 신혼부부용 꽃 승용차를 보았다. 과거보다는 많아진 것은 아니지만 전쟁터로 지원해 나가려는 아들을 잡아 두려는 어버이의 욕심으로 빨리 장가를 보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이란」인 운전사가 일러준다. 이래서 전쟁 속에서도 삶과 죽음의 균형은 오묘하게 유지되고 있는가 보다.
전쟁은 이런 여러 가지 조화가 깨어진 모습을 하고「테헤란」의 소란스런 분위기 속으로 서서히 육박해오고 있다.
○…1백80개의 침대가 있는「테헤란」최대의「호메이니」자선 병원에는 환자들의 30%가 남부전선의 부상자들이라고 병원 대변인이 일러주었다. 원래 의사수는 35명이었는데 6명이 전선으로 떠나서 요즘은 모두들 거의 24시간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기자는 새사람의 부상자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그들은 모두 비정규군으로「호람샤르」에서 부상한 장병들이었다.
「칼리미」라는 42세의 지원병은 왼팔과 왼쪽다리가 관절조금 위에서 절단돼 있었다. 야간 전투 중 포격을 받아 부상했다는 것이다. 부상 당시의 상황을 물어도 별로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대답한다.
오히려 옆에서 귤을 까 환자에게 권하던 아주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무언지 열심히 이야기한다.

<이슬람만 원한다>
외부 세계에서 어떤 도움을 기대하느냐고 물었더니 옆에 선 병원 측 공보관이 무엇인가 지시를 하는 듯 했다. 그러니까 그는『동도 서도 아니고 오직「이슬람」공화국뿐』이라고 「호메이니」의 말을 인용하며『자력으로 싸우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부상 당한지 하루만에 수술을 받았다고 하는걸 봐서 환자 수송이나 전방의 의료활동은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란」지도층은 이번 전쟁의 명분을「이슬람」교의 수호라는 종교적 명제에 두고 있다.
「호메이니」는 최근 연설에서『「후세인」「이라크」대통령이「나는 이제 진정한 모슬렘이 되었다」고 회개하지 않는 한 그와 협상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었다.
이런 종교적 우월감은「이란」국방 위원회의 전황발표나 지도자들의 연설에서도 특이한 용어로 나타나고 있다.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이 전쟁의 피해자는 그래서 모두「순교자」이다. 그러니까『몇 명 전사』가 아니라 어느 전선에서 몇 명『순교』라고 발표된다고 모 국방위의 최근 발표를 보면『오늘 6명의「이라크」공군 조종사가 신의 분노의 불에 타 죽였다』 고 했다「후세인」과 그의 군대는 늘『무신론자』거나『신앙심 없는 자』로 표현된다. 「호메이니」는『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신편에서 싸우는 편은 승리자고 신에 거역하는 편은 패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종교적 명분이 전쟁 수행이나 앞으로 어차피 다가올 휴전협상 등 지극히 현실적 과제에 어떻게 적용될지 흥미로운 일이다.

<매점매석 폭리 없어>
○…전쟁이 두달째 접어들었어도「테헤란」의 거리에는 아직 물자부족의 증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자는「이슬람」휴일인 31일 이곳 시장을 돌아보았는데 과일·야채·양고기·각종 통조림 등 주식물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일부에서는 고기값이 지난날 보다 20%쯤 올랐다고 하지만 기자가 찾아간 점포 주인은 그렇지 않고 생선은 오히려 싸졌다고 말했다.
수송이 불편해서 한때 달걀을 구하기 힘든 적도 있지만 이게는 정상적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겨울의 연료 사정에 대해 모두들 걱정하고 있지만 아직 전쟁속에서 오래 있는 매점매석 행위나 폭리 현상은 나타나고 있지 않은게 확실하다고 휘발유 품귀현상이 자가용 승용차의 운행을 억제하고 있지만 수송 차량이나 지방 교통망은 종전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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