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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장 휴가 가면 후임병들이 구타 … 피해자가 가해자로 '폭력의 대물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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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 사건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평범한 젊은이였던 선임병들은 왜 비이성적인 가혹행위에 빠져든 것일까. 그 미스터리의 한복판엔 이모(26) 병장을 정점으로 하는 ‘폭력의 사슬’이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윤 일병 사건에 대한 헌병과 군 검찰의 수사기록에서 확인된 것이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 병장은 군 헌병대 조사에서 “입대 후 처음 배치받은 부대에서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 병장은 선임병들에게 맞은 사실을 설문지에 적어 신고했고, 결국 다른 부대로 전출됐다. 그는 선임병이 되면서 구타 가해자로 변신했다. 윤 일병이 입대하기 전에는 지모(21) 상병과 이모(21) 일병 등이 주된 구타 대상이었다. 지난 1월 의무대에 진료를 받으러 갔던 신모(20) 상병은 “이 병장이 지 상병을 방탄헬멧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이 일병의 경우 지난 1월 목소리가 작고 동문서답을 한다는 이유로 하모(22) 병장에게 수차례 뺨을 맞았다. 또 본부포대에 근무한 김모(21) 상병은 “지 상병이 ‘이 일병이 업무가 미숙해 매일 선임병들에게 폭행을 당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진술했다. 지 상병과 이 일병 역시 지난 2월 18일 자신들의 후임으로 윤 일병이 전입오기 전까지 선임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윤 일병이 전입해오자 돌변했다. ‘목소리가 작다’ ‘업무가 미숙하다’ 등 자신들이 구타 당할 때 들었던 이유들을 대며 윤 일병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병장 등 선임병들의 지시와 압력에 따라 윤 일병을 때렸지만 이 병장이 휴가를 간 3월 15~27일에도 상습적으로 윤 일병을 구타했다.

  유모(23) 하사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 역시 집단 폭력의 일부였다. 윤 일병이 사망하기 사흘 전인 4월 4일에는 스탠드와 미니 확성기 등으로 윤 일병을 구타하기도 했다.

 이처럼 의무대의 폭력적인 분위기는 간부의 묵인 속에 선임병에서 후임병으로 대물림되며 더욱 공고해졌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구타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폭력 사슬이 구조화된 공간에서는 잔혹한 폭행도 정당한 행위로 인식된다” 고 분석했다.

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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