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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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사화 할만한 모든「뉴스」를 보도한다』는 것은 비단「뉴욕·타임즈」지 만의 명제는 아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은 기자로서의 상식이자 의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그 가치의 기준은 무엇인가.
기자라면 누구나 자주 겪게되는 회의를 또 맛보았다.
전국 과학 전에서 어느 여교사가 남편의 작품 일부를 표절해 국무총리 상을 탔다는 이야기다.
현지의 취재기자는 지난봄 지방 과학 전에 남편이름으로 특상을 받은 작품이 이번 전국과학 전에서는 부인의 이름으로 둔갑돼 상을 받았다고 전해왔다.
부정이랄 수 있다.
그러나 기사가운데 그 동기가 마음에 걸렸다.
30대의 남편교사는 여교사인 부인이 매일 50리도 넘는 곳을 통근하는 것이 안타까워 집 가까운 곳으로 전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빌려주었다고 했다.
남편도, 부인교사도 이를 시인했다. 더우기 부인교사 역시 지방 과학 전에서 우량 상까지 받은 과학도가 아닌가.
이럴 때 기자는 고민하게 마련이다. 현지 기자는 1주일도 넘게 고민을 거듭하다가 끝내 송고했느라 했다.
남을 크게 속여서 치부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헐뜯자는 것도 아닌 소박한 마음에서 저지른 잘못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다만 하루 1백리 길을 오가는 아내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려고 평점을 딸 수 있도록 이름을 빌려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그 자신과 부인이 교사의 신분이라는 점과 비록 범의는 없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와 국가를 속인다는 점을 깊이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기사의 취사를 놓고 다른 의견이 있었다.
정작 보도해야 할 경우에 눈을 감으면서 어쭙잖은 정의를 주장한다는 핀잔도 있었다.
그러나 부부애라는 것이 이 같은 방법으로 확인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욱 출품작을 상급기관에서 할당하고 일선 교사에게 이를 독촉까지 한다는 제도적인 비리에 분노마저 느꼈다.
부부 교사의 타지 근무는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어느 빗나간 부부애를 기사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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