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회관에 깃들인 애국정신 영원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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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늘 이 향불 앞에서 삼가 돌이켜 보면 고 신영순선생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요, 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 해도 명동에 있는 금싸라기같은 땅 3백여편을「유네스코위원회」에 기증하여 오늘의「유네스코」회관을 지울 수 있도록 한 사실은 잘 모를 것이며 안다고 해도 인심 좋은 희사가 정도로 기억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애국정신의 발상지인 황해도 신천에서 조부 신형균 선비님의 문하생이었던 이승만·김구·안중근·신석균·이동모·전영하 등 애국청년들의 애국행적을 눈 여겨 지켜보며 성장해운 청년시절의 선생은 기미독립운동 후 18세의 어린 나이로 오로지 조국을 찾겠다는 일념에서 중국대륙으로 망명하여 때로는 이발사로, 때로는 행상으로 가장하고 일제순경의 동태를 파악하여 독립군에 제보해 주는 등 음지에서 항일독립운동의 길을 걸었으며 또 임정요인들의 뒷바라지에 젊음을 불태우셨다.
광복 후 귀국하여서는 건국준비운동에 몸을 바치는 한편, 이청천 오광선 이성주 제씨 등 여러동지들과 함께 한청을 조직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준동에 대항하는 등 그의 애국활동은 해방이 되었다고 해도 잠시도 쉰 사이가 없으셨다.
그 후 초대 이승만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에 의해 감찰위원회의 감찰관으로 국정기강확립에 전력을 다하셨다.
무엇보다도 선생의 공적이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수도서울의 심장부인 명동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는 「유네스코」회관건물을 대할 때마다 선생필생의 업적인 「유네스코」 회관건립당시의 일을 생각하게 된다.
선생은 한 평생을 첫째도 조국, 둘째도 조국, 세째도 조국이라고 강조하시면서 후손들에게는「애국하는 정신과 인격과 그 생활」이란 교훈을 남기신 채 우리들과 더불어 유명을 달리하신 지도 이미 18일로써 1년이 지났으니 진실로 인문무상을 금할 길이 없다.
명동의 활기찬 모습, 그리고 그 거리 한복판에 우뚝 솟은「유네스코」회관! 이 웅장한 건물이 있는 한, 또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존속하는 한 선생의 모습과 선생의 정신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불멸할 것이오니 부디 고요히 잠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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