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 다 못 채웠는데 3조 늘려 … 겉도는 중기·자영업 대출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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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국은행이 경기부양책으로 내놓은 ‘금융중개지원대출’이 겉돌고 있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한은이 싼 이자로 은행에 돈을 빌려 주면 은행이 그 돈을 밑천으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해주는 제도다. 금리 조정 외에 한은이 쓸 수 있는 유일한 경기대응책으로 꼽힌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올 6월 1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회견에서 “금리 정책 외에 중앙은행이 보완적으로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으로 대출 정책, 지급준비율, 공개시장 조작 세 가지가 있다. 지준율과 공개시장 조작 정책은 현재 쓸 상황이 아니다. 경기대응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대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이 대출 한도를 늘리면 은행에서 중소기업으로 풀리는 자금이 증가하며 경기부양 효과를 낸다.

 최경환 경제팀이 잇따라 경기부양책을 내놓자 한은도 지난달 24일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12조원에서 15조원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5일 한은에 따르면 올 8월 현재 금융중개지원대출로 나간 돈은 9조7126억원에 그쳤다. 기존 한도 12조원도 못 채운 셈이다. 유보 한도(특별한 쓰임새를 정해 놓지 않은 여유 한도) 1000억원을 감안하더라도 2조1874억원이 남았다. 실효성을 높일 대책이 마땅찮은 상황에서 한도를 3조원 증액한다며 생색만 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도는 지난해부터 삐걱거렸다. 대출 한도를 늘려 놔도 돈이 풀리는 속도가 지지부진했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중개지원대출 프로그램으로 기술형 창업 지원 등 항목을 만들었는데 새로운 대출상품이다 보니 알려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점점 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매달 2000억원가량 대출 잔액이 늘고 있다. 내년 상반기면 한도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저금리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금융중개지원대출 금리와 시중 금리 간 차이가 좁혀졌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자면 금융중개지원대출 금리를 더 낮추는 등의 대책이 뒤따라야 했지만 한은은 손을 놓고 있었다.

 게다가 일선 은행창구에선 ‘유동성 풍요 속 빈곤’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소외되고 있다.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연구실 조영삼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금융 유동성은 현재 풍부하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 한계 기업인데 간접 대출 형태를 띠고 있다 보니 일반 은행의 대출 기준에 못 미치는 회사는 금융중개지원대출 혜택을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적한 금융권 보신주의에서 한은도 자유롭지 못하단 얘기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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