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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핸드메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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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명품 수제 이발 O만원’.

 퇴근길 자동차 창문에 꽂혀 있던 광고전단 문구다. 왠지 어색해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기계로 하는 이발도 있나. 발칙한 상상력이 넘쳐나는 숱한 SF영화에서도 로봇이나 기계가 이발하는 장면은 본 기억이 없다. 가위나 전기면도기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결국은 사람의 눈과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 이발이다. 당연히 핸드메이드(hand-made)일 수밖에 없는데 수제(手製)라니, 분명히 ‘오버’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니 서글펐다. 얼마나 절박하면 그랬을까. 이발소 손님은 자꾸 줄어든다. 중년 아저씨들도 미용실을 찾고, 동네마다 7000원짜리 저가 체인 이발소가 자리 잡고 있다. 떠나가는 손님을 붙잡고 싶은데 좋은 솜씨 말고는 내세울 게 딱히 없다. 그래서 등장한 표현이 ‘명품 수제 이발’ 아닐까. 기계처럼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가게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표현을 쓰는 데가 이발뿐만은 아니다. 얼마 전 개업한 동네 고깃집 메뉴에 ‘수제 갈비’가 있었다. ‘수제 햄버거’나 ‘수타 짜장’은 물론 ‘수제 떡볶이’ ‘수제 맞춤양복’ 같은 것들도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공급과잉 상태인 자영업, 그중에서도 경쟁이 심한 음식점이나 개인 서비스업이다. 본질적으로 손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업종들이다. 그런데도 ‘수제’라는 표현을 넣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방증일 것이다.

 자영업의 어려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28.2%)은 OECD 평균(15.8%)의 두 배에 가깝다. 이 비율과 1인당 국민소득(GDP)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비율을 줄이지 않고서는 자영업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전체 국민소득을 높이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힘들고 멀겠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골목상권 보호’ 같은 응급조치도 필요하겠지만 장기적으론 정부와 기업, 근로자의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취업이 어려우니 아무거나 창업하라는 건 곤란하다. 실적이 안 좋으니 당장 사람부터 줄이자는 것도 기업 스스로에 부메랑을 던지는 격이다. 고용안정보다 임금을 우선시하는 일부 노조의 태도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고교생 중 수능 1~3등급은 나중에 치킨을 시키고, 4~6등급은 치킨을 튀긴다. 7등급 이하는 치킨을 배달한다. 지금 어느 자리에 있든 언젠가 누구나 자영업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사장부터 취업준비생까지 이 위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마침 올 노사협상 테이블엔 통상임금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놓여 있다. 잠재적 자영업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노사가 이를 요리해 보면 어떨까. ‘수제’ 간판 아래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자영업자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