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마른 감정의 낟알 가을 햇살에나 여물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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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름은 가고 있다. 추운 여름이었다.
한갓 마음안에 위안을 받기 위해 어딘가로 떠났던 사람들 강가에 자갈이라도 되고 싶었던 여름 상념은 추절추절 비를 맞고 돌아 왔었다.
낯선 여정의 길목에서 무심히 바라보고 싶었던 놀. 낙조의 바닷가.
그러나 화살처럼 내려꽂히는 비를 보았을 뿐 기번지를 어정어정 맴돌던 마음은 춥기만 했다.
이런 이변의 냉하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교훈은 무엇인가.
태양마저 가리어 마음 한구석을 이지러뜨려 놓았던 여름. 설사 계절이었다 하더라도 언제나 인간에게 불변이란 불가능함을 알게 했다.
자주 자주 비가 내렸었다.
그 많은 비는 한조각 자성의 거울이라도 내마음 안에 닦아 놓았을까.
나는 진리와 흡사한 것과 쉽게 만나서 자신의 상상력만 결합시키고 본질을 만난 것처럼 안주하려 했었다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도구로 진실을 희롱하였으며 내 허약한 지성의 저차원에서 곡잘 머리를 치켜드는 증오도 있었다.
모순에서 모순으로 건너뛰며 살다가 모순의 뿔에 치여 쓰러지곤 하였다. 나는 불가사의한 날개를 달고 있었다. 그것은 진리처럼 측량할 수도 잘 파악되지도 않는 것이었지만 그 진상은 아픔이었다』 나는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소중하게 간수하였다. 어느 날 그것은 다시 비상할 것이다.
비밀은 언제나 자기를 보호하려고 마음안에 설치한 은둔의 섬이다.
그 섬은 내부에서 가장 강하게 숨쉬는 생명력의 미욱한 양분이 되어질 것이다 명등한 가을 하늘아래 설 때 나는 우려될 것이다.
그 잡동사니의 심연속에 왕성하게 자라는 치졸함에 얽어매는 부실한 내 이성의 밧줄을 나는 염려할 것이다.
지난 여름에 덜 말린 축축한 감성의 낟가리. 그 한알한알을 여물게 할 좋은 햇살용 가을에나 만나려나.
나는 아무 짐승이나 잠을 재우는 동굴이기 보다 인적이 드무나 메아리로 정한을 깨우치는 산정이고 싶다.
우르르 달려가다 발이 묶이고 다시 큰 몸짓으로 달려가다 주저앉는 파도만이 울어대는 해안.
그런 해안의 어디쯤 조용히 몸을 돌려 앉은 섬이고 싶다.
책장을 넘기며 삶의 비결을. 찾는 피곤한 삶을 떠나서, 생의 에센스를 탐색하기 위해 횃불을 혀는 목적의식을 떠나서. 그래 .엉거주춤 자세가 당당치 못한 엉클어진 표정을 잠시 잊기 위해서 누구나 떠난 자리엔 더 선명히 보이는 캄캄한 어둠이고도 싶다 매듭으로 얽힌 편광의 띠를 풀어 던지고 신성한 하늘을 보아도 괘념치 않을 어리석지만 밝은 미소를 띠는 자아를 호명하고 싶다.
여름의 그 무력한 기후에도 안간힘으로 열매를 단 유실수의 내적 몸부림을 내가 안다면 성취안에 우위와 증명을 다시 확인하는 극의와도 나는 피하지 않고 마주 서야할 것이다.
생을 교묘히 운전하는 기술의 면허를 따내는 억지를 거부할 줄 알고 삶이란 체험을 통하여 성실히 우수를 터득할 때 온건한 행운의 「카드」를 발부 받는 것임을 내가 알 수 있을 때 초추의 소명은 나에게 아름다운 회생의 망용 마련해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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