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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조폭도 아니고 … 내 아들 죽은 것처럼 잠 설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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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4일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 관련 긴급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이 윤 일병 사진을 들어 보이며 한민구 국방장관을 질책하고 있다. 폭행에 시달린 윤 일병은 지난 4월 6일 음식을 먹던 중 선임병들에게 가슴 등을 맞고 쓰러진 뒤 뇌손상을 입어 다음 날인 7일 사망했다. [뉴스1]

“요즘 같은 시대에 말이나 되는 일이에요? 군대가 무슨 조폭도 아니고….”

 인천시 부평구에 사는 주부 오모(51·여)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을 흘리는 듯 말이 자주 끊겼다. 4일 기자와 전화통화로 군에서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하다 숨졌다는 윤모(23) 일병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오씨는 올 4월 스물두 살 아들을 수도권에 위치한 육군부대에 보낸 엄마다.

 “윤 일병이 우리 아들과 한 살 차이예요. 꼭 내 아들을 떠나보낸 것처럼 가슴 한구석이 아려요.”

 오씨는 “윤 일병 사건 이후로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눈물을 훔치는 일도 잦아졌다고 한다.

  군대에 자식을 보냈거나 보낼 예정인 가족들이 윤 일병 사건 이후 ‘집단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본지 취재진이 접촉한 10여 명의 입영 병사 부모는 “윤 일병 사건이 꼭 내 아들 일인 것 같아 밤잠을 설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막내아들을 지난 3월 군에 보낸 회사원 한모(48·서울 강동구)씨는 지난주 내내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다. 일주일째 아들로부터 연락이 없어서였다. 한씨는 “윤 일병 사건으로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연락까지 안 돼 매일 불안에 떨었다”며 “엊그제 선임 하사로부터 아들이 잘 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한숨 돌렸다”고 말했다.

윤 일병 사망 나흘 뒤인 4월 11일 현장검증에서 구타 상황을 재연하는 모습. [사진 KBS 캡처]

 윤 일병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방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일부터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엔 “가해자를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4일 현재 5000여 명이 서명했다. 다음 아고라에는 입영 연기 서명운동까지 등장했다.

 군에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성들의 모임인 ‘곰신 카페( http://cafe.naver.com/komusincafe)’에도 걱정하는 글이 100여 개 이상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남자친구가 28사단에서 근무하는데 무척 걱정된다”고 적었다. 윤 일병 사건을 공론화했던 군 인권센터는 가해자들의 결심공판을 참관할 ‘법정 시민감시단’을 모집 중이다. 군 검찰은 5일로 예정된 결심공판 연기 신청서를 재판부에 낼 계획이다.

  한편 윤 일병의 어머니는 아들 사망 전날(지난 4월 6일)에도 면회를 시도했지만 만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이날 기자와 만나 “윤 일병의 부모님이 아들 면회 간다고 음식까지 다 쌌는데 북한 무인기 추락 사건으로 부대에 비상이 걸려 못 갔다고 했다”고 전했다. 윤 일병의 어머니는 올 2월 아들이 자대배치를 받은 직후에도 면회를 시도했었다고 한다. 임 소장은 “부대에서 운동회가 열렸는데 당시 윤 일병이 어머니에게 전화해 ‘마일리지가 안 돼서 면회가 안 된다’고 말했다”며 “당시 이모(26) 병장이 옆에서 전화통화를 감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윤 일병의 어머니가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내가 미친 척하고 갔으면 아들 멍 보고 문제를 제기했을 텐데…’라며 펑펑 우셨다”고 말했다.

 해당 부대는 마일리지를 쌓으면 외박 등을 나갈 수 있게 하는 상훈 제도를 운영했다. 임 소장은 “마일리지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방문을 막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임 소장에 따르면 폭행을 주도한 이 병장은 평소 “내 아버지가 건달이다. 나를 찌르는 놈은 아버지 회사를 망하게 하고 엄마는 섬에 팔아버리겠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해왔다고 한다. 협박 때문에 윤 일병이 소원수리를 못했다는 것이다.

고석승·안효성·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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