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협조가 이룬 기적|문닫은 공장 28일만에 재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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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통조림회사인 「별표통조림」 제조원 조일산업 주식회사(대표송형구·71·경북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12의1)가 폐업한달 만에 근로자들의 노력과 경영주의 용단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조일산업은 지난 5월26일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 등에 11억여원의 빚을 지고 문을 닫았다.
대부분 10대 소녀들인 생산직근로자 2백50여명은 밀린 노임과 퇴직금을 챙기기에 앞서 자신들의 생활터전인 회사를 살려야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노조(분회장 권대근·36·살균부)총회가 소집됐다.
경영주는 회사재산과 재고품을 처분하여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전 종업원들은 『우리 공장이 문을 닫아서는 안됩니다. 전 종업원이 합심해서 어려움을 극복할 각오가 돼 있읍니다』며 회사가 정상화 될 때까지 임금을 받지 않고 일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종업원들은 한사람 빠짐없이 전보다 더 일찍 회사에 나와 기계에 기름을 치고 청소를 하며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한편으로는 관계당국과 주거래은행·노총 등 각계 요로에 회사를 살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사주 송형구씨와는 백방으로 자체적인 희생방안을 협의했다.
또 한 팀은 원료공급자인 꽁치·골뱅이 등 어선 선주들을 찾아 원료를 당분간 외상으로 공급해 주도록 설득했다.
평생을 통조림 생산에 바쳐『통조림에 살고 통조림에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송씨는 이 같은 종업원들의 움직임을 보고 크게 용기를 얻었다.
송씨는 개인주택·아파트」·농지 등 사재 모두를 털어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에 담보로 말기고 5억원의 대출을 얻어냈다. 간부들의 인사이동도 단행했다. 새로운 각오로 조업중단 28일만인 지난달 24일 회사는 다시 정상가동을 시작했다.
조일산업은 해방과 함께 설립돼 1957년 주식회사로 형태를 바꾸고 착실히 성장, 국내시장의 20%를 차지하는 굴지의 공장으로 자랐다.
동해안의 주어종인 꽁치·고등어·골뱅이 등 생선통조림과 영덕군 일대에서 생산되는 복숭아를 비롯 ,포도·양송이 등 과일 통조림까지 모두 40여종의 통조림을 생산해왔다.
6·25직후인 53년 영덕 명산인 게(해)통조림을 미국에 처음 수출했고 일본·홍콩·「유럽 각국에까지 통조림을 수출, 지난 78년도에는 수출실적 2백20만「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수출이 둔화되고 동해안 일대의 꽁치·고등어·골뱅이 등 어획이 크게 줄면서 원료구입이 어렵고 값이 오른 데다 국내판매실적마저 떨어져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 문을 닫기에 이르렀던 것.
24일 닫혔던 공장문이 활짝 열리고 「컨베이어·벨트」가 다시 경쾌한 운전음을 내며 돌아가는 순간 2백인 여 종업원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사주 송씨는 종업원들에게 『이 공장은 여러분의 것. 힘을 모아 키워나가자』고 거듭 다짐했다.<포항=문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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