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천지에 「차붐」일으킨 "갈색의 폭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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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차붐」. 이것은 작년이래 이 지구상에 생겨난 가장 특이한 신조어중 하나다. 모든 것을 쓸어 담는 백과사전에 그저 소리 없이 한 몫 끼여드는 것으로 그칠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세계 「프로」축구의 정상이며 심장부임을 누구도 다투지 않는 서독「분데스·리가」에서 예기치 못했던 돌변을 몰고 온 역사적 전환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차붐, 차붐, 차붐』-. 축구가 생활의 큰 즐거움인 서독인들은 싱그러운 초원을 호쾌하게 질주하는 한 낯선 야생마에 처음엔 호기심으로 대했으나 그것은 곧 경이의 탄복과 찬탄으로 변해버렸다.
「차붐」의 함성은 발군의 「스타·플레이어」부재로 다소 침체의 기미를 보이던 「분데스·리가」를 격동시켜 뜨거운 활기를 불러일으켰고 「프랑스」·「네널란드」·「이탈리아」·영국 등으로까지 「텔레비전」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어 나갔다. 「차붐」은 무섭게 폭발하는「스피드」, 유연하면서도 파괴적인 「드리블링」, 용수철 튀듯 치솟아 오르는 「헤딩」, 그리고 공포의 위력을 실은 강력한 「슈팅」을 신묘하게 펼쳐냈다.
서독인들, 아니 모든 「유럽」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차붐」은 「갈색의 폭격기이며 「아시아」의 호랑이다. 「펠라」가 흑진주라면 그는 갈색의 진주다.』
그리고 그들은 벌써부터 「차붐」이 누구인지를 잘 안다. 한국에서 온 거범량이라는 것을….
○…서독 국가대표「팀」감독 「유프·데어발」씨는 차범근을 이렇게 평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도 특급에 속하며 서독대표선수들과 비교해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고차원의 축구를 한다.』 또 서독 「빌트·차이퉁」지는 『차범근은 위대한 축구선수다. 기민성, 다양한「트릭」, 그리고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행동을 그는 구사한다. 서독국가대표인 「페터·브리겔」은 모든 독일공격수들을 견제해왔으나 오로지 차범근에게만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차범근의 비범한 재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1월 「프랑스』의 주간 「메이어」지는 『80년대의 가장 위대한 「키커」의 발굴』이라는 차범근 특집기사에서 『그는「베켄바워」「게르트·뮐러」등 세계적「스타·플레이어」의 뒤를 잇는 서독축구의 보배로 날아다니는 「윙」』이라고 평가한 후 「데뷔」한지 불과 반년만에 『서독축구 「카이제르」(황제)의 자리를 이미 탈취했다』고 단정하기도 했다.
서독의 가장 권위있는 축구전문지 「키커」지는 80년도 신년 첫 호에서 차범근을 표지의 인물로 내세우고 「분데스·리가」에서 세계수준의 탁월한 선수로 맨 먼저 차범근을 선정했다. 78, 79년도 「유럽」최우수선수였던 영국출신의 「케빈·키건」은 차범근에 이어 2위였다.
「분데스·리가」의 79∼80년「시즌」경기가 작년8월에 시작된 이래 차범근은 노쇠기의 소속「팀」「아인트라하트·프랑크푸르트」가 줄곧 상위급에 머무르도록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 평균 3「게임」에 한번 꼴로「분데스·리가」「베스트11」에 선정되었고 득점「랭킹」도 계속 10위안에 들었던 것이다.
○…이제 차범근은 80년도「유럽」최우수선수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최우수선수는 곧 세계 축구사에 영원히 빛나는 「슈퍼스타」열전의 주인공이다.
「슈테른」지는 79년도 「세계4대 상승세인물」로 「슈미드」서독수상·「에드워드·케네디」미상원 의원·「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테레사」수녀와 함께 차범근 선수를 선정하기도 했다.
차범근은 79년만이 아니라 한국역사를 통틀어 세계무대에서 가장 호의적으로 주목받은 한국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 차범근이 소속「팀」「프랑크푸르트」군단과 함께 모국의 「팬」들을 찾아 9일 내한한다. 「차붐」의 1년만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이다.
모처럼 국민들에게 주어지는 청량제같은 기쁜 선물이 될 것이 틀림없다.
차범근은 11일과 15일 서울운동장에서, 13일엔 부산공설운동장에서 한국대표 화랑과 친선경기 3연전을 벌여 세계 정상으로 도약한 1년간의 변모를 보여줄 것이다.
글=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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