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통신] "후세인 도망치다니…" 시민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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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함락 일주일째인 15일.

중세의 암흑시대를 방불케 하는 혼란과 무질서의 먹구름이 차츰 걷히기 시작하면서 바그다드는 조금씩 생기를 되찾고 있다. 공습과 약탈로 파괴된 건물들 사이로 사람과 차량들이 다니기 시작했고, 푸성귀와 과일을 파는 노점상들도 등장했다. 땅거미가 지면 바그다드는 다시 암흑의 도시로 돌아가지만(전기공급이 여전히 끊겨 있음), 대낮의 도심은 제법 사람들로 붐빈다.

기자들이 묵고 있는 시내 팔레스타인 호텔에서 멀지 않은 피르두스 광장에서 만난 유수프 하산(46). 전직 이라크 농업부 공무원. 그는 후세인에게 배반당했다고 믿는 이라크인들 가운데 한명이다.

"바스라만 해도 열흘 이상 버텼는데 바그다드는 힘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맥없이 무너졌다. 티크리트도 저항 없이 미군에게 넘어갔다. 후세인 일가가 저희들만 살겠다고 미국과 뒷거래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

하산은 후세인이 목숨을 건지는 대가로 바그다드를 넘겨주기로 미군 정보당국과 타협을 했고, 협상은 러시아가 주선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전했다. 후세인과 아들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미스터리'를 설명할 길이 없다보니 이런 소문도 돌고 있다는 것이다.

바트당 당원이라는 하이삼 마후무드(45)는 후세인을 경멸한다고 말했다. "매일 TV에서 지하드(聖戰)를 촉구했던 후세인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최후까지 저항해 아랍의 진정한 영웅이 될 것으로 믿었던 이라크인들에게 후세인은 더러운 이름만을 남겼다"고 흥분했다. 쓰러진 후세인 동상을 이라크 사람들이 신발로 때린 것은 자신들을 배반한 후세인에 대한 극도의 경멸감의 표시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슬람 문화에서 발만큼 더러운 것은 없다. 하산은 바그다드가 점령된 지난 9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시아파 빈민들이 모여사는 사담시티의 주민들이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후세인 정권 아래서 천대받던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뛰쳐 나왔다는 것이다. 미군을 환영해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호텔 앞에서 만난 대학생 잘랄 아민(23)도 "이렇게 쉽게 바그다드가 함락될 줄은 몰랐다"며"후세인이 이라크를 버렸지만 많은 국민은 진정한 지도자를 찾기 위해 미국과 투쟁할 것이다"고 말했다.

기자를 요르단 국경에서 바그다드까지 실어준 국경택시 기사 아사드 함자(35)는 "이라크인 대부분은 후세인의 독재도 싫지만 미국도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인들은 중동의 석유를 노리고,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에 체질적 반감을 갖고 있으며, 이 점은 다른 아랍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바그다드=서정민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이라크 파병부대 창설 15일 전남 장성 상무대 연병장에서 열린 이라크 파병 서희부대 창설식에서 남재준 육군 참모총장이 대원들을 사열하고 있다. 선발대는 17일, 본대는 5월 중순까지 이라크로 파병된다. [장성=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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