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의 심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엽기적인 살인 사건들이 잇달고 있다. 그 행태를 열거하기조차 끔찍한 사건들이다. 요즘 부산으로 탁송되었던 어느 여인 시사건도 범인은 남편인 것 같다.
존속살인은 근간에 예사로 일어나고 있다. 동반 자살에서 살인에 이르기까지 섬뜩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인도의 시인「R·타고르」는『인간이 짐승이 되면, 짐승보다 더 나빠진다』고 개탄한 일이 있었다. 「안토니·스토」라는 영국의 정신 분석 학자가 저술한 『인간의 공격심』이라는 책을 보면 동물의 세계에선 동족의 살해란 좀체로 보기 어렵다고 한다.
짐승들은「스토」의 실명에 따르면 같은 종속의 짐승을 공격할 때는 자신의 힘이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따라서 그 이상의 공격을 가해 중상을 입히거나 죽여 버리는 일은 없다고 한다.
물론 먹을 것이 없는 극한상황에선 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고는 종속 내의 투쟁은 힘의 강약을 서로 확인하는 하나의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한 편은 으례 물러나게 마련이고, 강한 편은 그 뒤를 추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토」 박사는 인간의 세계는 다르다고 말한다. 인간은 피해자가 도망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패배한 적에게 치욕과 고통을 주어야 하며 끝내는 죽여 버려야 만족한다는 것이다.
「스토」박사는 동물의 세계가 잔혹한 것으로 묘사된 것은 대부분 만들어 낸 얘기라고 했다. 다만 인간의 세계에서만이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망상적 적의, 정신병질적 적의. 「스토」는 인간의 잔혹성을 이렇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살인 사건이 잇따르는 요즘의 우리 세태도 필경 망상적이고 정신병질적인 적의의 만연(척연)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회의 「아노미」현상(도덕적 무질서)이 빚어낸 하나의 사회병 이랄까.
신의보다는 이기를, 관용보다는 보복을, 사랑보다는 저주를… 이를테면 이와 같은 역리와 역정의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결국 문화 의식으로 되돌아가는 것뿐이다. 언어의 사용법, 교양의 축적, 사람들 사이의 교섭하는 방법을 규제하는 갖가지 관습, 그것을 체계화해 강한 구속력을 갖는 법률, 선과 악을 분별하는 내면적 기준으로서의 도덕,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킨 예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게 하는 종교-.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앞서는 것은 인간의 양심과 양식이 존중되는 사회 풍토인 것이다.
이것은 아득히 먼일같이 생각되지만 그것 없이는 결코 화평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정신보다 물질이 앞서는 사회일수록 그것은 더욱 절실한 문제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