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 200명 앞에서 연주한 정경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성당 안의 야트막한 단상 위에서 정경화씨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대관령국제음악제]

27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횡계리 대관령 성당. 횡계 주민들의 줄이 성당 바깥까지 이어졌다. 먼저 온 170명은 성당 안 객석에 앉았다.

 높이 50㎝가 채 안 되는 야트막한 단상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6)씨가 섰다. 다음 달 5일까지 열리는 제11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횡계 주민을 위한 공연이다. 주민들은 주민등록증으로 거주지를 확인받고 선착순으로 입장했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리는 바람에 유리창으로 안을 볼 수 있는 유아 예배실에까지 30명이 들어가 공연을 지켜봤다. TV 화면으로 중계를 한 별관에는 200여 명이 들어찼다. 그러고도 입장하지 못한 주민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관령음악제는 매해 10여 회씩 강원도민들을 위한 공연을 열었지만 횡계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음악제가 열리는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불과 6㎞ 거리지만 횡계에는 정식 공연장이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음악제의 음악감독인 정씨는 지나던 길에 우연히 이 성당을 발견했고, 울림이 좋아 공연을 계획했다고 한다.

 성당은 15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예배당이다. 여기에 간이 의자를 빼곡히 놓아 객석을 늘렸다. 피아노도 들여놓기 힘들어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곡만 연주됐다. 갓난아기부터 초등학생까지 어린 아이들도 자유롭게 입장했다. 관객들은 정씨를 향해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도 찍었다. 정씨는 친근하게 공연을 이끌었다. 바흐의 소나타 두 곡과 파르티타 한 곡을 모두 연주한 정씨에게 청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어 앙코르 곡 연주가 시작되자, 성당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정씨는 아예 문을 열어놓고 앙코르를 연주했다. 그는 “주민들이 음악을 전혀 낯설어하지 않고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횡계의 인구는 4000여 명. 이곳에서 30년 넘게 산 하관호(55)씨는 “영화도 강릉까지 30분 차 타고 가서 보는 곳”이라 소개했다. 또 “클래식 음악 공연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몇달 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며 “아마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이 이야기만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평창=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