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풍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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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순자」에 나오는 얘기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요변을 여섯 가지로 꼽았다.
첫째로 예의불신. 사회의 조작과 질서, 또는 사상과 행동에 있어서 조화를 잃은 상태.
둘째는 내외무별. 사람들의 속마음과 겉마음, 가정의 안과 밖, 나라의 안과 밖을 분별할 줄 모르는 상태.
셋째는 남녀음란. 세상이 온통 황음한 상태.
넷째는 부자상의. 아버지와 아들, 스승과 제자, 상관과 부하, 모든 사람의 사이가 사랑과 존경의 관계가 아닌 서로 의심하는 상태.
다섯째는 상하괴리. 한마디로 불신풍조다. 서로가 믿음이 없고, 인연이 멀며, 유대감이 없는 상태.
여섯째는 구난병지. 「구」는 외적, 「난」은 국내혼란. 이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태.
순자가 살고있던 시대는 아득히 먼 기원전의 전국시대. 그때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고, 고목이 웅웅소리를 내고 울면 금방 세상이 망하는 괴변으로 생각했던가 보다. 그러나 순자는 그것 보다 더 두려운 것이 앞서의 여섯 가지「요변」들이라고 했다.
순자나 맹자는 모두 유학사상의 2대 원류를 이루었던 거유들이었다. 다만 맹자의『성선설』과는 반대로 순자는『성악설』을 주장했었다. 한사람이 이상주의자였다면 다른 한사람은 현실주의자였다.
후세의 사람들이 순자의 현실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한결「아이러니컬」하다.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고, 여전히 험난한 때문일까.
아무든 순자는 반세기후 진시황의 통일제국이 세워지는 문턱에서 사회제도의 확립을 염원하는 경향이 강했었다. 그 점에선 그의 경구가 갖는 여운은 길고 깊다.
그는 한마디로「불신」풍조를 질타하고 그의 불식을 주장한 것이다.
요즘 어느 장관은 우리의 세태를 두고 『믿어야 할 것은 믿지 않고, 믿지 않아야 할 것은 믿는다』고 개탄했다. 오늘의 어지러운 사태도 그 근원은 이런 불신에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불신, 그 자체보다도 불신이 있게된 배경에 있다. 불신의 온상을 없애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을 타개하는 관건인 것 같다.
그것은 우선 정치의 신뢰회복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지난 시절 사람들은 정부의「공식발표」를 보면 으례 그「복선」을 생각해야 했다. 실제로 또 그것은 번번이 적중했었다. 이른바「정보정치」가 그런 정황을 일반화했었다. 이런 상황이 오늘의 불신을 낳은 것이다.
새 시대를 기다리며 우선 정치인은 새로운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며, 그것을 보는 국민의 자세도 또한 새로운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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