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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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일째 잡힐 줄 모르던 설악산 큰불이 국립공원 안에 있는 칠성봉 에 까지 번져 겨우 진화됐다 한다. 산불은 5월에 제일 많다. 1년 중에 일어나는 산불 총계의 3분의1이 5월에 일어난다.
이 달에는 유달리 날씨가 건환 했다. 같은 나무라도 침엽수는 활엽수 보다 연소하기 쉽다. 이번 산불이 태운 것도 잣나무, 소나무 등의 침엽수 였다.
그것도 수령이 1백년에서 2백년에 이르는 원생림이다. 보통은 원생림에선 화재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약20년 이하의 유년림에서 제일 잘 일어난다.
그러나 한번 불이 붙으면 원생림이 잘 탄다. 건조한 낙엽층이 두텁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번 산불이 급히 퍼진 것은 초속30m의 강풍 때문이었다. 더욱이 경사진 곳에서는 연소속도가 가속화하기 마련이다.
이래서 바람만 조금 불어도 산불은 시속 10km의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간다. 경사가 30도가 넘는다니까 연소속도는 더욱 빨랐을 것이다.
산불을 잡는데는 발생한지 15분이 고비다. 그 안에 발견하지 못하면 끄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설악산에는 산화감친탑이 하나 제대로 서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미 때늦은 다음에야 산불을 발견했는가보다. 더욱이 산불에 대한 방화시설도 엉망이었다.
산불을 끄기 위한 방법에는 대체로 4가지가 있다. 첫째가 방화선의 설정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엔 6·25때의 지뢰며 수류탄의 폭발이 작업반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두 번째가 항공기에 의한 난연제 용액을 살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우리 나라에는 산화감시를 위한 공중정찰기조차 없는 실정이다. 고작 동원시킨 게 물 소방차 10대였다.
세 번째가 고성능송풍기로 바람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방법이다. 북풍을 타고 불이 퍼지고 있다면 남풍으로 이에 맞서게 하여 불길을 잡자는 것이다. 물론 우리에겐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네 번째가 불탈 위험이 있는 지역에 여러 가지 난연제용액을 철포 하는 방법이다.
이것도 우리에겐 물밖에 없다. 너무 산세가 험하고 바람도 세기 때문에 손을 쓸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만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니 이만저만 딱한 얘기가 아니다.
「스웨덴」에서는 나무열매를 주워도 법률에 걸린다. 「폴란드」에서는 허가 없이 풀을 뽑아도 5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다. 그만큼 소중한 게 자연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그러면서 산불만은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여기는 버릇이 있다. 이번 산불은 나무끼리 마찰해서 일어난 것 같다고 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우리에게만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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