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급 자살보험금 약관대로 560억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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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보험사와 고객들이 마찰을 빚어온 자살보험금에 대해 금융당국이 ‘약관대로 재해사망보상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약관을 잘못 적었다며 일반사망보험금만 줘온 보험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은 24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자살한 고객의 유족 등에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ING생명에 기관주의와 과징금 4900만원의 징계를 하기로 했다. 관련 임직원 3명은 주의, 1명은 주의상당 처분을 받는다. 과징금은 다음달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확정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8~9월 ING생명 종합검사 과정에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보험가입 2년 뒤 자살한 428건에 대해 560억원(이자 포함)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했다. 약관에 ‘보험 가입 2년 이후 자살한 고객에게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돼 있지만 액수가 절반 이하인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한 것이다.

 현재 생보사들은 가입 후 2년을 넘긴 뒤 피보험자가 자살하면 일반사망으로 분류해 보험금을 지급한다. 2010년 4월 표준약관이 개정된데 따른 것이다. 그 이전에는 ING생명 등 대부분의 생보사들이 약관에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준다고 해놓고 실제론 일반사망보험금을 줘왔다. 통상 일반사망 보험금은 재해사망 보험금의 3분의 1이나 2분의 1이다. 생보사들은 이에 대해 “어느 회사인가가 처음 잘못된 약관으로 금감원 승인을 받았고, 이를 다른 회사들이 베껴 쓰다 생긴 일”이라며 “일종의 오탈자에 해당하므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해왔다.

 금감원은 제재 결과에 따라 ING생명에 ‘미지급 보험금 지급계획을 마련하라’로 통보하기로 했다.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은 다른 보험사에 대해서도 ING생명에 준해 지급계획을 마련하도록 지도 공문을 내릴 계획이다. 푸르덴셜생명과 라이나생명을 제외하고 삼성·교보·한화생명 등 22개 생명보험사가 대상이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그동안 22개 생보사가 자살한 고객의 가족에서 제대로 주지 않은 사망보험금은 2179억원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앞으로 지급해야 할 보험금까지 포함해 이 액수가 5000억~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감원 허창언 부원장보는 “보험사에서 어떻게 보험금을 지급하는지 보고 받고 그 적정성을 검증할 것”이라며 “다른 보험사에 대해서도 과징금 등의 조치를 위해 검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ING생명은 행정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된 법원의 판결·조정 가운데 재해사망보험금의 일부만 지급하라는 결정이 꽤 있다는 게 근거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안그래도 실적이 좋지 않은데 자살보험금까지 더 내주면 타격이 크다”며 “향후 소송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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