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연기로 연극의 멋 듬뿍 안겨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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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연극 공문은 이미 발표되었거나 앞으로 발표될 희곡을 가장 적절하게 무대화시킬 수 있는 필요조건에 의하여 건축된다. 만약 희곡을 무용화시킬 수 없는 공문만 존재한다면, 그러면서도 연극이 공연되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된다면 그 때 희곡은 주어진 공문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새로운 양태를 찾아야만 되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부)공연은 처음부터 위험부담을 안고 출발한 기적이었다. 그러나 『바람과…』에 참여한 뒷「스태프」들의 적절한 무대 기술의 활용, 화려하면서도 세련미를 갖춘 무대미술은 그러한 기우를 말끔히 가시게 했다.
이번 『바람…』 공연에서 한국 연극인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연극하기에는 결코 적절하다고 할 수 없는 공간속에서도 연기자들의 개인 능력으로 단점을 극복하고 극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히로인」전지인은 나약한 여인의 몸으로 페허 위에 다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오하라」역을 충실히 해냈다.
전지인과 강관자, 그리고 이대로의 정확한 발성은 많은 연기인의 모범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중견 연기자 이순재와 사미자·백일섭은 조금은 짜임새를 결여하고 투박하던 1부 공연의 흐름의 단점을 보완하는데 힘써 전체의「앙상블」을 이루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2부 공연에도 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대가 풍성함에 비해 등장 인물들이 왜소하여 특히 KK단의 방화 장면은 기대를 저버렸다.
「오하라」역의 젊었을 때의 분장과 나이가 들었을 매의 분장이 같았다는 점, 그래서 마지막에 사랑과 자식·재산·젊음 등이 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난 후의 처절감 등을 나타내는데 비장함을 주지 못한 점등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무대의 전환에 따라 극이 박진감을 가져야 하는데 결말에 가서 필요 없는 「에피소드」의 삽입으로 처진 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단점을 지적하면서도 『바람…』 공연에 의의를 두고 싶은 것은 관객에게 풍성한 연극미를 안겨 주었다는 것과 신인 문창길 등 새얼굴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연극계를 젊어지게 했다는 점이다.

<연극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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