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스무 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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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다시 4·19를 맞았다. 올해로 스무 돌.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두 번 이나 흘렀다.
올해 따라 4·19D를 맞는 각계의 감회는 특별한 것 같다. 전과는 달리 각종 기념 행사가 도처에서 성대히 거행되고, 각계 지도자들이 다투어 4·19를 언급하며, 그 정신을 기리고 교훈을 되새기자는 분위기도 어느 때보다 충만하다.
마치 그동안 4·19를 잃었다가 새로 되찾은 듯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4·19란 무엇이었던가.
쉽게 말해 독재와 부정선거와 부정 부패를 학생을 앞세운 국민들이 궐기하여 부정한 것이 4·19였다. 대신 4·19가 그 터전에 세우고자 했던 것이 자유와 민주와 정의였던 것이다.
우리가 4·19를 잊지 못하고 또 잊어서도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4·19로 하여 다시는 이 나라에 독재와 부정선거와 부정 부패가 없도록 하자는, 또는 4·19로 하여 이 나라에 자유와 민주와 정의를 꽃피우게 하자는 온 국민의 한결같은 소망이 있기 때문에 4·19는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4·19는 독재와 부정 부패 쪽에 서는 사람에게는 악몽과 같은 기억일 수밖에 없고 민주와 정의 쪽의 인사에게는 언제나 활력을 샘솟게 하는 원천이다.
그러나 20년이 흐르는 동안 4·19의 정신이 이 땅에 만개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건국 이후 12년 만에 4·19가 났지만 4·19 후 12년 만에 10월 유신이 일어났다.
4·19에 의해 부정된 역사의 과정이 4·19 후에 그대로 반복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4·19는 대학의 기념 행사에서마저 위축되고, 그 정신이 고양되기는커녕 위험시· 적대시됨으로써 구석으로 내몰렸었다.
4·19를 마치 규모가 큰 학생「데모」를 당시의 경찰이 무능했던 탓으로 진압 못한 결과로 보려는 사고마저 없지 않았다. 학생「데모」는 막을 수만 있으면 큰 문제가 없고 막을 수 없을 때라야 큰 문제가 된다는 사고의 경향마저 한동안 존재했었다. 이 같은 물리력 맹신 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수많은 역사의 경험이 있다. 오늘날 헌법에 국민 저항권을 규정하자는 논의에 큰 이논이 없는 것도 4·19 후의 역사를 겪은 경험의 산물로 보인다. 4·19야말로 국민이 정당하게 저항권을 행사한 생생한 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시 학생들과 국민은 저항의 결과 얻은 승리에만 도취했을 뿐 그 정신을 깊이 뿌리박게 하는 노력은 등한했던 게 사실이다. 그 후 20년 동안 누구나 통한해 마지않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좀더 이성적으로, 좀더 냉정하게, 좀더 자제했던들 한국의 역사는 보다 순탄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후회를 누구든 갖고 있다.
이제 잃었던 것 같기만 하던 4·19를 다시 찾아 성대한 기념 행사도 가지는 터에 지난날의 후회사를 되풀이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최근 학원 문제에 임하는 학생들의 자세가 이미 이런 경험을 유의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다시 4·19를 맞아 한번 더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제 4·19 스무 돌을 맞아 자유·민주·정의의 4·19 정신이 다시는 변방으로 내몰리지 않고 그것이 이 땅에 뿌리박아 꽃을 피우도록 온 국민이 새로이 다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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