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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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의회에는 세 계급이 앉아 있다. 그러나 저 뒤의 기자석에는 이들 세 배급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제4부가 앉아 있다.
이렇게「에드먼드·버크」가 말한 적이 있다고「칼라일」은 그 저서『영웅과 영웅숭배』에 적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헨리 파터·브로암」경이 처음으로 했다는 설도 있다.
「T·B·매콜리」가 1828년에 저음으로 말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브로암」경이 23년이나 24년에 하원에서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는 따로이「칼라일」자신도 그의 명저『불란서 혁명』의 제1권 제6장에서『유능한 편집자들의 제4계급이 일어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누가 제일 먼저 기자를「제4계급」이라 평했는가에 대해서는 어렵게 제설이 엇갈려 있다.
어쨌든 기자가 언론의 자유를 위한 기수이기에 중요하다고 여기는데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나는 당신의 말에 찬동하지는 않지만 당신에게 그런 발언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만은 죽음을 무릅쓰고 옹호하겠다.』
언론의 자유가 얘기될 때마다 인용되는 이 말은「볼테르」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있다.
사실은「볼테르」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는 그저『당신 스스로가 생각할 것이며 이와 똑같은 특권을 다른 사람들도 누릴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을 뿐이다.
이 말을「S·G·탈렌틸」이『「볼테르」의 친우들』이란 책에서 그렇게 바꿔 쓴데서 착오가 생긴 것 같다.
그 유래야 어떻든 자유를 존중하는 어느 나라나 헌법에서까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나치」가 정권을 잡자 제일 먼저 언론의 숨통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통제된 언론을 통해 일방적인 선전만을 강행해 나갔다.
이때 과연 독일의 언론인은 충분히 할 일을 다 했던가』종전과 함께 제일 먼저 서독의 언론이 치러야했던 것은 이에 대한 자가반성이었다.
오늘 우리는 남다른 결의를 되새기면서 80년대의 첫「신문의 날」을 맞는다. 도시 파문의 탓일지는 몰라도 다른 나라에는「신문의 날」이 따로 없다.
그러니까 신문의 날이 있다는 것은 조금도 자랑거리는 되지 못한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새삼스레 구호로 삼아야 한다는 것부터가 성숙하지 못한 우리네 언론의 딱한 사정을 말해 주는 상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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