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세 걱정 않는 공연장만 있으면 막 오르기전까지의 고통쯤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며칠전 연습을 끝내고 극장을 나서는데 외부극단공연에 출연했던 우리단원중의 한 친구가 출연료를 받아와서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몇푼 안되는 출연료지만 목로술집과 라면집 외상갚고 청계천에서 봐뒀다던 구두 한 켤레 사고도 돈이 좀 남았단다.
우루루 달려가 자장면 한 그릇씩 비우고 나오는데 식당아주머니가 쫓아 나왔다. 돈을 안냈다는 것이다.
저녁을 사겠다던 그 친구 왈, 식당에서 자기돈으로 식대 내본지가 하도 오래돼서 돈내는 것을 깜빡 잊었단다. 다들 껄껄 웃기는 했지만 연극하는 젊은이들에게 경제적 고통은 자못 심각하다.
공연을 며칠 앞두고 이리뛰고 저리뛰며 탈춤을 추고, 목청높여 대사를 외다 고성방가죄로 구류를 살고 나오는 일, 고된 연습을 마치고 「포스터」 한장 더 붙이려고 풀통들고 나갔다가 붙잡혀서 유치장에서 대사외며 밤새우는 일….
이 정도의 고생이야 정말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좀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구해 분석하고, 토론하고, 우리손으로 만든 소품, 의상 정성들여 손질하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밤잠 못자며 겪는 고생이야 당연히 해야될 일이며 막이 오른후의 희열과 보람이 크니 오히려 행복하기까지한 고통이다.
그러나 며칠까지 밀린 극장집세를 갚지 못하면 극장을 비워달라는 건물주의 경고장을 받을 때 우리는 참으로 우울해지고 만다.
그간 말도 많았던 당국의 소극장 폐쇄→연기→유보조치등 숱한 난관속에서 얼마나 어렵게 지켜온 극장인가. 또한 이 몇년간 우리가 해온 소극장운동이 결코 헛된 작업만은 아니지 않았는가 말이다.
물론 이 시대, 우리나라 연극인들만의 고난이 아니며 누가 시켜서도 아닌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치부를 위해서, 혹은 출세를 바라고 연극을 하는 것은 아닐진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나 두텁다. 어떻게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을까하는 약한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극장은 시장 한 모퉁이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간판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고 객석도 편안하지 못한 「괴롭고 초라한 극장」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으로 이제는 이 극장공연은 빼놓지 않고 관람하는 고정관객도 몇 사람 생겼고, 단원 모두가 내몸처럼 아끼는 장소가 되었다.
집세 때문에 극장이 넘어가게 된 이 마당에, 공연이 시작되면 옆시장에서 생선파는 아주머니도, 배추장사 아저씨도 『소극장에서 공연 시작됐어요. 조용조용 장사합시다』―이런 얘기가 오고 가길 바란다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