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많이 하는 한국어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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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구미 어떤 선진국의 어린이들 보다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일본 총리부의 청소년 대책본부가 세계아동의 해를 맞아 한국을 포함한 미·일·영·불 등 세계 6개국의 10∼15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보면 한국어린이의 가정학습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48분으로 일본과 함께 다른 나라에 비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재양성과 두뇌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라야만 나라의 발전을 기할 수 있는 우리의 여건에 비추어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흐뭇하고 마음 든든한 일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 우리의 교육현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데 우리의 안타까움이 있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두말함 것도 없이 인문의 끊임없는 성장을 지향하는데 있다. 때문에 지·덕·체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균형된 교육이 이룩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가정 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의 현상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교육은 존재하는양 파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치 못할 것이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날, 모든 어린이들은 대학까지의 고되고 험난한 입시지옥의 역정에 들어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학교의 수업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은 차제 하고라도 집에 돌아와서도 숙제다, 과외공부다, 거기다 과외공부의 숙제다 해서 공부에 여념이 없도록 강요되는 것이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딱한 형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까지의 오래고 고된 시련을 거치고도 뜻대로 대학입학의 관문을 뚫지 못하는 학생이 한해에만 수십만명씩에 이른다는 데서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는 한결 심각해지는 것이다.
중학의 추첨 배정에 이어 고교입학까지 무시험 전형제로 바꾼 것이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과부담을 덜어 주기는커녕 도리어 악화시켰고 이른바「고3병」이 만연하는 주요 이유가 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그것을 단시일 내에 완전히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많고 복합적 요인을 안고있다.
따라서 장기적 안목에서 교육제도 전반에 걸친 일대 개혁이 시급히 단행되어야겠지만 교육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통념을 불식하는 노력도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대학입학 그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지육·덕육·체육의 균형이 취해지는데 교육의 본질이 있다는 인식이 제고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학·고교입시에 반영되고있는 체력장제도도 이같은 교육의 원칙에 입각해서 운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교부는 체력장 평가방법을 현행 상대 평가제에서 받은 점수대로 평가하는 절대 평가제로 다시 환원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인데, 국민체력의 향상이 필요하다고 해서 체력장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강행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부터가 의문이다.
조령모개식의 제도변경에서 오는 혼란도 문제지만 상대평가제건 절대평가제건 어차피 입시위주의 변경에 불과한 것이라면 학생들의 체력향상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체력을 배양시키는 길은 평소 학습에만 빼앗기는 시간을 몸을 튼튼히 하는데도 할애할 수 있도록 하고 시설도 갖추어 틈틈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체력을 갖도록 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 어린이들이 공부 못지 않게 몸도 마음도 튼튼하고 덕목에서도 뛰어날 수 있도록 학교와 가정이 뒷받침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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