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외면한 헌법은 실효 없다|권영성<서울대 법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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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헌법은 헌법제정 당시의 지배적인 정치 세력들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한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헌법은 정치적 사설에 의해서 규정되는 측면을 가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역으로 정치적 현실과 정치적 권력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정치의 준칙」이라는 측면을 갖는다.

<이념 지향형이 되어야>
이와 같이 헌법은 이중적 성격을 갖는 까닭에 헌법은 그 정치사회에 특유한 현재적인 정치적 여러 현상에 합치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장래에 있어서의 이념 지향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완전무결한 헌법을 개정하는 작업의 어려움이 있다.
개인의 경우에 각자가 그 특유의 성격·가치관·능력·행동양식 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국민의 경우에도 공통된 역사적 체험, 지정학적조건, 정치·경제적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그 특유의 정치의식·정치신조·정치행태·정치관행 등과 같은 정치 풍토를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정치풍토를 정치학에서는 정치 문화라 하고 헌법학에서는 마법의식·헌법관계 또는 헌법현상이라 부른다. 헌법의 내용은 그 국민에게 특유한 정치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 특유의 정치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거나 전적으로 외면할 경우에는 헌법규범은 「마이너스」효과를 초래하거나 국민으로부터의 거부반응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그 규범력을 상실하여 단순한지면상의 팔자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된다.
이를테면 1962년 헌법에서는 철저한 정당 국가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 공직선거에 있어서 무소속 입후보를 금지한바있다. 이것은 다양한 정치적 의사의 표출 통로를 인위적으로 협착시켜 버린 과오를 범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문화수준에서 불때 그 이념·조직·지지기반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유아기에 머무르고 있는 정당들을 장년기에 달한 것으로 착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한가지만 더 예를 든다면 현행 헌법은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1을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선출하게 하고있다.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국회의원은 국민이 그들의 손으로 직접 선출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왔고 또 그렇게 알고있는 국민의 정치의식 내지 헌법의식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일부 국회의원의 간선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제도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헌법의 제정작업은 정치문화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객관적인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문화와 헌법과의 관계는 「뢰벤슈타인」교수의 예에 따라 의복과 신체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의복은 신체에 알맞는 것이어야 할 뿐 아니라 몸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라야 한다.
정치문화 정밀분석을 「사이즈」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으면 입고 다닐 수가 없다. 헌법의 경우에도 우리의 정치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제도의 채택은 헌법의 규범력 내지 실효성에 상처를 입힐 우려마저 있다. 우리의 정치문화와 융합되기 어려운 외국의 이질적인 제도를 즉흥적으로 도입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같은 꽃 씨앗도 그것을 우리 땅에 심었을 경우와 독일이나 「프랑스」에 심었을 경우에는 꽃의 크기나 색깔이 다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있다.

<참여형의 영역 넓혀야>
동일한 내용의 헌법제도일지라도 정치풍토에 따라 그 전개과정이나 운용의 결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정치문화는 크게 보아 향리형 또는 지방형, 신민형 또는 복종형, 참여형의 세 가지로 분류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정치문화는 이상의 세 가지 유형이 혼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정 접촉할 수 있는 지역과 주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 국가나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국민이 있는가하면, 전근대적인 또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의식으로 말미암아 정치 체제와의 관계에서 수동적이고 복종적인 성향을 가지는 국민이 없지 않으며, 또 모든 정치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정치체제로부터의 영향을 이해하고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국민도 있다.
민주국가라면 향리형과 신민형의 영역은 최소한도로 축소시키고 참여형의 영역을 최대한 확 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 헌법은 또한 정치문화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데 에 그칠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정치문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형성하는 기농까지도 담당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정치문화 중에서 밝고 긍정적인 측면은 헌법 제정에 있어서 그 척도가 되어야 할뿐 아니라 헌법의 내용으로 수용되어야 하지만 전근대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은 배제되고 지양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헌법의 현실 규제적인 성격이 또한 강조되어야함 이유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이 공정 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것이냐를 가려내는데 있다. 이러한 선별작업은 비록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단 개헌논의와 관련하여 형성된 여론이 지적한 문제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여론을 척도로 할 때 이를 태면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인식의 결여.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인권침해, 사회적 기본권의 「프로그램」시, 자유와 권리의 내재적 한계에 대한 무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아니한 권력에의 접근, 장기집권의 관행, 정치권력의 남용과 부패경향, 공무원의 특권의식, 공직자선거에 있어 돈으로 표를 사고 파는 행위 등은 우리 정치문화에 있어서 부정적인 오인의 몇 가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매스컴 역할에 큰 기대>
하지만 그와 같은 우리 정치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이 오로지 헌법의 차원에서 문제되는 것만으로는 배체되거나 지양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전근대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은 오랜 주벽이나 도박습성처럼 간단한 방법으로 그리고 단기간에 교정되거나 치유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교육의 성격을 띤 장기간의 사회 교육적 방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우리는 우리나라의 「매스컴」이 다해야 할 역할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아뭏든 헌법학이 헌법규범의 논리적 정합성과 체계적, 완전성만을 문제로 삼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헌법문제를 정치문화와의 상관관계에서 이해해야하는 단계가 되자 헌법학의 성격도 과거의 미세적 헌법학에서 거시적 헌법학으로 탈바꿈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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