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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역풍 맞은 '차르' 푸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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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사고 조사를 위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이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사고 현장에 도착했으나 친러시아 반군 세력이 총을 들고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흐라보브 AP=뉴시스]

말레이시아 여객기 MH17편 격추가 우크라이나 반군 소행으로 잠정 결론 지어지면서 러시아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친러시아계 반군이 러시아제 미사일로 여객기를 격추한 것으로 사실상 규정하고 이들에게 미사일을 제공한 러시아의 책임을 제기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백악관 긴급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여객기가 친러시아 반군 장악지역에서 발사된 지대공미사일에 맞았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반군들은 러시아에서 꾸준한 지원을 받아 왔다”고 제기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통제권을 갖고 있는데도 지금까지 이를 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도 기자회견을 하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에서 “시간이 없다. 당신이 정말로 도울 생각이 있는지 보여 줄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고 공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너무나 오랫동안 무시해 왔다”며 유럽 정상들에게 행동을 촉구했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시신들이 동유럽의 들판에 널브러져 있다”며 러시아가 진상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올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러시아의 참석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련 당사국들은 반군 세력이 여객기 격추 현장을 통제하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국제조사단의 접근을 제한하는 데 대해서도 반발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국제조사에 합의했지만 케리 장관은 조사단의 현장 접근과 증거물 훼손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러시아는 격추와 관련된 의혹을 ‘러시아 때리기’로 부인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국방차관은 19일 “러시아와 반군을 유죄로 몰고 있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러시아 내부에서도 비난이 나온다. 러시아의 정치평론가 콘스탄틴 폰에거트는 일간지 코메르산트에 “아무리 부인해도 전 세계가 (모스크바를 반군의 후원자로) 믿을 것”이라며 “대가를 치르는 것은 친러 반군이 아니라 크렘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푸틴 대통령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 수집을 폭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망명을 허용하며 미국과 충돌했다. 유럽연합(EU)에 대항해 옛소련 연방국을 대상으로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추진했고 서방의 강경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합병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강한 러시아’ 정책은 여객기를 격추시킨 자국산 미사일 한 발로 안팎에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한편 20일 사고기의 피격 정황을 풀어줄 블랙박스가 발견됐다. 친러 반군 지도자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는 격추된 여객기의 블랙박스들을 확보해 곧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넘길 거라고 밝혔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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