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겠다는 공법으로 우리 회사 지었죠, 이제 믿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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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건설기술의 서현주(왼쪽)·김광만 공동대표가 서울 성내동 사옥에서 신공법인 ‘DBS 탑다운’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신공법으로 이 사옥을 지으면서 전문가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다. [강정현 기자]

“신공법을 개발했으니 한 번 적용해 보라고 건설회사에 제안하면 으레 ‘그거 어디서 시공했는데’고 물어봅니다. 특허 받은 기술이라고 해도 시공 실적 없으면 소용 없어요.”

 건설 관련 신공법·소재 개발 전문업체인 바로건설기술의 김광만(58) 대표는 2010년 초 공사 현장의 소음과 비산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지하 터파기 공사 때 가설 기둥(센터파일)과 지붕의 보를 ‘우물 정(井)’ 자 형태로 연결하는 공법이다.<그림 참조> 그런 다음 우물 정자의 가운데 공간을 빼고 슬래브를 타설하면서 지하 1층→지하 2층→지하 3층으로 공사를 이어가는 형태다. 이걸 ‘DBS 탑다운’이라는 브랜드로 등록했다.

 기존에는 철골 기둥을 세운 다음에 직각으로 보를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이때는 ‘열 십(十)’ 자 모양이 된다. 김 대표는 “기존 공법에서는 흙막이 벽이 무너지고 소음·분진 발생량이 많았다”며 “DBS 탑다운 방식으로 공사하면 벽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물론 시공이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기존 공법과 비교해 원가는 15% 이상, 공사기간은 20%가량 줄었다. 국토교통부로부터 건설신기술 인증도 받았다.

 김 대표의 표현대로 “안전성·친환경성을 개선하면서 공기는 줄이고, 경제성은 높여주는 1석3조 공법”이었지만 도통 영업이 되지 않았다. 현장에선 “검증받지 않았다”며 고개를 저었던 것. 2010년 5월 그는 ‘그러면 우리가 먼저 신공법으로 사옥을 짓자’고 결심했다. 서울 성내동에 110억원을 넘게 들여 지하 2층, 지상 6층 건물을 세웠다. 건설비의 절반가량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당시 매출 100억원, 영업이익 4억~5억원대 회사로서는 도박을 한 셈이다.

 공사 기간 내내 현장과 학계 전문가 50여 명을 초청해 ‘영업 겸 검증 공간’으로 삼았다.

바로건설기술이 개발한 ‘DBS 탑다운’은 터 파기 공사를 할 때 가설 기둥을 세우고(①), 지붕을 ‘우물 정(井)’ 자 형태로 연결하는(②) 공법이다. 나중에 우물 정 자 공간에 슬래브를 타설하면 이 부분까지 기둥 역할을 해 벽을 지탱하는 힘이 강해진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무리를 하느냐’는 핀잔을 많이 들었어요. (웃으면서) 하지만 워낙 하고 싶은 일인데…. 어쩌겠습니까. 지금이요? 2년 만에 빚 다 갚았지요. 매출은 150억원으로 뛰었고 수익성도 갑절이 됐습니다.”

 이 회사가 개발하고 시공 1호가 된 ‘DBS 탑다운’ 공법은 극동방송 서울 사옥(한화건설), 경기도 성남 정자3차 푸르지오 아파트(대우건설), LG유플러스 평촌센터(서브원) 등 20여 개 현장에 적용됐다. 평촌센터 건설을 맡고 있는 서브원의 정종우(51) 현장소장은 “산업용 발전기·변압기 등을 설치하기 위해 높이 8m짜리 지하층을 건설 중”이라며 “지하의 암반이나 수압처럼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응하는데 DBS 탑다운이 최적의 공법”이라고 평가했다.

 지상에 적용하면 기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반 건물의 기둥 간 간격은 7~9m쯤 된다. 이 간격을 넓히려면 고급 철골을 써야 한다. 하지만 탑다운 방식을 적용하면 추가 비용 없이도 기둥 간격을 12~16m로 늘릴 수 있다.

 김 대표는 1984년 쌍용건설에 입사해 주로 건설 현장에서 근무했다. 아내인 서현주(52) 바로건설기술 공동대표는 대우건설 자회사였던 서울건축 출신이다. 국내 최연소, 여성 최초 건축구조기술사(공학박사)로 업계에선 유명인이다. 두 사람의 건설 업력을 합하면 59년이다. 잘나가던 건설 전문가 부부가 독립을 결심한 것은 99년 발행한 『튼튼하고 아름다운 건축시공 이야기』가 계기가 됐다. 토목부터 골조·미장·타일 등 건축 공사의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안내한 책인데, 지금까지 시리즈 5권이 나왔다. 판매량이 7만 부가 넘어 건축분야에서는 최고 베스트·스테디셀러로 꼽힌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획기적인 실무 책자를 기획했지요. 하지만 마침 외환위기 직후라 출판을 해주겠다는 곳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면 ‘내가 직접 만들겠다’는 오기가 생겨서 출판사를 차렸지요.” 사옥을 지은 과정과 책을 펴낸 사연이 비슷한 셈이다.

 이 책이 대박이 나면서 2001년 독립 법인을 만들었고, 이후 건술기술 개발 전문업체의 길을 가고 있다. 김 대표는 건설기술 업체를 건설 분야에서 ‘재미있는 소재’나 ‘돈을 벌어주는 노하우’를 제공하는 회사로 정의했다. 간단하게 말해 ‘건설 발명가’란 얘기다. 사실 지금까지 이 회사가 내놓은 제품도 대부분 ‘발명품’이다. 물을 모아두는(집수·集水) 우물(井)이란 뜻의 집수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공사 중인 현장에는 빗물이든, 지하수나 오수든 물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이 물을 저장해주는 구조물이 바로 집수정이다. 이 회사가 만든 집수정은 원통형 철강 소재로 돼 있어, 추가적인 터 파기나 콘크리트 타설이 필요 없는 게 특징이다. 지금까지 2000곳 넘는 현장에 적용됐다. 숱하게 짝퉁 제품이 나왔지만 업계에서는 지금도 바로건설기술 제품을 최고로 쳐준다.

 고층 건물의 기초를 다져주는 기초보강재도 이 회사가 처음 시장에 내놨다. 가령 300m 높이의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지하로 최소 5m 이상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해야 기울어지지 않는다. 김 대표는 “특수 설계된 철강 보강재를 선보이면서 타설 깊이를 3.5m로 줄였다”며 “국내 최고층인 부산 해운대 두산 위브(80층)에 적용됐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강재의 성능을 증명하기 위해 1000t 하중에도 견디는 공학 실험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숱하게 실패도 경험했다.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커플러(체결구)’ 같은 제품이 그렇다. 고층 건물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철근과 철근을 수직으로 연결해주는 커플러가 반드시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선 용접을 하기도 한다. 바로건설기술은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든 신형 커플러를 개발했지만 아직까지 첫 상품을 출시하지 못했다. 기존 제품과 비교해 워낙 가격이 비싸서다.

 그래도 김 대표는 씩씩하다. “계속 도전해야지요. 실패가 두려우면 아무것도 이룰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신기술·신공법에 대한 갈망을 에너지 삼아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글=이상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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