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거 실적 급급|졸속 수사 예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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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건해결에만 쫓긴 경찰의 졸속수사로 무고한 사람들이 자주 강력사건의 「범인」이 되고있다.
부산칠산동 여인토막살해사건이 그랬고 최근 잇따라 발생한 부산연산동의 일가족4명 살해사건, 서울구의동여인살해사건의 경우 경찰은 진범을 두고 가짜범인을 범인으로 구속했다.
경찰은 사건발생후 재빨리 「범인체포」를 발표했으나 며칠뒤 진범이 나타나는가 하면, 끝내 범행을 입증하지 못해 구속영장조차 청구하지 못하는등 인권유린 사태를 거듭 드러내고 있다.
이때문에 경찰이나 검찰에 구속됐다가 무협의가 밝혀져 풀려나더라도 국가에 대해 보상을 청구할수 없으며, 특히 신문에 크게 보도되는 강력사건의 경우 정신적·육체적 고통과 함께 오랫동안 불명예를 짊어지게된다.

<서울구의동 여인살해사건>
서울동부경찰서는 지난16일 구의동신축공사장에서 발생한 김부순여인(26)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남편 윤용국씨(29)를 사건발생 이틀뒤인 김여인의 외삼촌집에서 검거, 진범이라고 밝혔으나 23일 진짜 범인이 잡혔다.
윤씨는 경찰에 연행된후 『아내가 죽었다는말에 세상이 싫어졌고 죽고싶은 생각에서 허위자백을 했다』고 말했으나 경찰은 윤씨진술가운데 의심스러운 점을 캐내지도 못하고 물증도 없이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윤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때 첨부된 서류는「피의자 산문조서」와 사건신고자의「참고인 진술조서」뿐. 당시 경찰이 증거로 제시한 윤씨의 한복바지에 묻은 혈흔(혈흔)은 구정날 친척집에 돌아다니며 먹다흘린 식혜국물등 음식찌꺼기로 밝혀졌다.
윤씨는 구속된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2차진술때부터 범행사실을 부인했으나 그의 주장은 일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은 진범2명이 검거된후에도 「알리바이」를 계속 수사한다며 윤씨를 석방치 않다가 인권유린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24일 하오에야 집에 돌려보냈다.
윤씨가 23일 저녁 기자들과 만나 『경찰에서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리에는 경찰서장·수사과장·형사계장등 경찰간부들이 시종 윤씨를 에워싸고 그의 말을 지켜보았다.

<부산연산동 일가족4명 살인사건>
경찰은 현장발견자이자 집주인인 국해수씨(40)를 사건당일인 10일 연행, 「호텔」·여관을 열흘동안 전전하며 수사한끝에 자백을 받아 「진범」으로 발표했으나 물증을 잡지못해 신병을 확보한지 16일이 지나도록 구속영장조차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국씨의 현장발견 과정이 통상의 국씨 일과와 다르고 국씨의 옷에 혈흔이 묻어있는 점등을 용의점으로 잡고 현장에서 나타난 수건의 정액등의 감정결과를 제시해 추궁끝에 자백을 받아내고 19일 진범으로 발표했다.
당시 이례적인 범인의 기자회견에 대해 경찰은 손달용치안본부장의 순시와 때를 맞춘것이라는 비난을 받았었다.
그러나 수사를 지휘한 부산지검김정부검사는 경찰이 제시한 이같은 증거는 국씨가 범인임을 전제로한 정황증거일뿐이고 국씨가 범인이라는 증거능력이 없다며 결정적인 단서를 찾도록 보완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은 국씨의 신병확보를 위해 18일 지난해12월 마을사람들과 시비를 벌인 사실을 이유로 즉심에 넘겨 구류3일을 받도록한데 이어 21일에는 마을사람들과 개를 잡아먹은 사실을 들추어 다시 구류3일을 살게하는등 즉심에 계속 넘기고있다.

<부산칠산동여인토막살해사건>
지난해 6월19일 하오3시30분쯤 동래구칠산동190 주택가 복개천에서 머리와 다리가 없는 20대여자 알몸토막시체가 발견되자 경찰은 인근 D목욕탕의 「보일러」 공인 정상규씨(27)를 연행, 인근 절에서 3일간 조사끝에 자백을 받아 진범이라고 구속했다. 이때 경찰은「보일러」 실에서 나무를 자르던 톱·칼,「보일러」실 입구 흙에 묻은 혈흔등을 증거물로 제시했으며 정씨가 시체발견현장에 없는 머리부분은 「보일러」아궁이에 넣어 태웠다는 진술에 따라 23일하오8시 화장장인부를 동원해 이곳에서 사람 뼈를 찾아내 범인임을 뒷받침했다. 경찰은 정씨를 기자회견까지 시켰다. 그러나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면도칼로 난자한 지문의 속살을 성형, 지문채취에 성공하자 수사결과는 뒤집혔다. 피해자 신원이 양희자양(24·남구룡당동295·다방종업원)으로 밝혀지고 양양 친구들의 진술에따라 이양길씨(26·동래구두직동」46의4) 가 유력한 용의자로 밝혀지자 정씨를 신병확보 5일만에 풀어주었다.
이때문에 정씨는 신체적·정신적피해는 물론 직장까지 잃는 피해를 보았다. <문병호·김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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