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학 부문의 난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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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무리한 중화학공업 육성책의 부작용이 점차 노출되고 있다.
정부 당국의 자료를 보면 일반 기계·조선 등 중화학공업의 경우는 가동도 하기 전에 내외자 원리금 상황기간이 도래하여 가뜩이나 어려운 자금 사정을 더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오해 중화학 업체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1조6천억원이며 이중 차관·외자 대부 등 외자 상환액이 1조4천1백93억원에 달하고 있으나 이를 감당할 능력이 모자라 상환 기간의 연장, 대환 등의 조치가 불가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금·기술·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제 착공식의 중화학공업 정책이 벽에 부딪치게 된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구체적 사례와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설 중이거나 건설이 끝난 주요 중화학업체의 작년 중 가동율을 보면 가장 호조라는 대한중기가 70%를 기록하고 있을 뿐, 대부분 50% 미만이며 심지어는 4.5%밖에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업체도 있는 형편이다.
이는 내외수요를 사전에 치밀하게 하지 않고, 우선 세워 놓고 보자는 특정 정책 의욕 과잉이 빚어 낸 결과인 것이다.
중화학공업은 출발 당초부터 박대한 자금 조달이 중요 문제로 대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주요 기업의 경영상 판단은 무시되기가 일쑤였다.
때문에 현재 건설 중인 중화학업체의 내자 부족은, 작년의 4천8백58억원에 이어 올해는 1조2천9백69억원, 내년에는 1조2천2백94억원에 달해 갈수록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안겨 줄 것이다.
이러한 자금 부족을 국민투자기금이나 차관 등 타인 자본으로 메우고 있으므로, 당연히 재무 구조가 취약하여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일간의 중공업 재무 구조를 비교하면 기계·자동차·전자 등 대부분의 부문에서 열세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중화학공업의 이 같은 실정은, 산업간 균형 성장을 저해하고 대금 배분의 왜곡을 가져오며 인력 수급의 차질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다.
중화학공업이 일어설 수 있는 바탕, 즉 각종 하부 계열 산업의 토태가 없이 모든 중화학공업을 한꺼번에 건설하고 그 다음 관련 계열 산업이 뒤따라오도록 하는 것은 산업간의 균형을 도외시한 방법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또 79년 중 내자 지수액만 9천5백71억원이었다는 수치는 국내 재원의 효율적 사용이 절대 불가결한 이 시점에서 이에 역행한 것은 물론, 긴축 기조의 유지에도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컨대 중화학공업의 육성은 우리의 경제 발전 단계에 비추어 반드시 거쳐야 할 노정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국내 경제 여건과 조화된 계획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화학공업 육성 계획의 축소 조정으로 업계의 자금 조달 능력에 상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내외 경제 환경을 면밀히 분석한 다음 기본 계획 자체를 재검토하여 단계적으로 건설해 가는 것이 소망스럽다.
거기에는 중화학공업을 뒷받침하는 하부 구조가 먼저 구축되어야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술·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끔 먼저 합리적인 경제정책이 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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