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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의 희곡 4편 새로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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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호남 갑부의 아들로 「와세다」영문과를 졸업, 1920년대 문필가로 활약하던 중 가수 윤심덕과 현해탄에서 정사한 초성 김우진(1897∼1926)의 미발표 희곡 4편이 희곡사를 연구하는 유민영 교수(한양대)에 의해 발굴되어 이미 발표된 1편과 함께 최근 작품집으로 출간되었다.(형설출판사 간·어문총서 114·문고판·2백23「페이지」·값 7백원)
희곡 외에도 시 40여편, 평론 20여편, 번역 3편 등을 남긴 초성은 그 죽음에 대한 세인의 구구한 억측과 오해로 말미암아 오히려 문학적 평가는 유보되어온 셈.
화려한 이력과 부를 지닌 선구적 지식인이 왜 30세의 나이로 죽음을 택하게 되었는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발굴자 유교수는 그가 『근대지식인이 직면한 사회와 개인의 문제에 도전하다가 패배하여 역사 속에 매몰된 요절천재』라고 주장했다.
1920년 봄 동경 유학생들과 결성한 극예술협회에서 연극활동을 시작한 그는 극작 뿐만 아니라 연극이론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여 주로 「버나드·쇼」의 사회문제극과 「스트린베리」의 표현주의극에 깊이 심취했다.
그가 남긴 5편의 희곡은 습작품인 『정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살직전인 1925, 26년에 쓰여진 것으로 신파극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로서는 대단한 현대성과 문제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교수는 『그가 최초로 서구근대극을 제대로 연구했고 또 깊이 영향받은 작가였기 때문에』 문제성을 띤 본격적인 근대극을 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최초로 쓰여진 『정오』는 일본인과 친일 한국인에 대한 혐오감, 사회부조리에 대한 저항 등이 깔린 다소 엉성한 작품.
그러나 목포 유달산 밑 사창가를 무대로 하류사회의 밑바닥을 「리얼」하게 묘사한 『이영녀』(3막)는 자연주의 계열의 본격적 사회문제극이다.
이외에 『두더기 시인의 환멸』(1막), 『난파』(3막), 『산돼지』(3막)의 세 작품은 모두 작가자신이 짙게 투사되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
『두더기…』에서는 전통관습과 근대 「모럴」사이에서 방황하는 개화기 지식인을, 『난파』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유교식 가족구조 속에서 정신적으로 몰락해 가는 젊은 시인을 그리고 있다.
자살하기 20일 전에 탈고한 『산돼지』는 시와 희곡의 조화를 시도한 작품으로 종래의 강력한 사회개혁 주창이 변모하여 오히려 사회개혁의 사명을 짊어져야 하는 자신을 괴로워하고 있다.
유교수는 이중 『난파』를 가리켜 등장인물의 무질서한 등·퇴장과 장면의 종잡을 수 없는 비약 등 전형적인 표현주의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표현주의극으로서 상당한 관심을 모은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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