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앞바다에 거북선이 다시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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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산앞바다에 거북선이 다시 떴다
배앞머리 맨위쪽, 거대한 용두는 성큼 달려들것처럼 입을 벌린채 하늘을 향해 목을 고추세웠다. 그아래 현판에는 눈을 횹뜬 천왕모습의 귀두가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옥포·당포·한산·용포·명량-임신난의 그 숱한 해전들에서 전천후 상승선으로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충무공의 거북선. 그 배가 4백년뒤인 오늘 옛모습을 더듬어 복원된 것이다.

<학계서 고증…전장 34 m>
판옥선이면서 뱃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으로 용두에서 꼬리까지의 전장33.9m, 선체길이 25.2m, 최대선폭 10.2m, 저판에서 거북이등(귀배)까지 전체높이 6.3m, 배수량 1백t/, 수용병력 1백50명.
해군 제7267부대가 건조해 1월 31일 진수시킨 목조의「복원거북선」은 각종 사적자료에서 뽑아내거나 유추한 임난때의 거북선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임난때」라고 못박은 것은 그 이전에도 거북선이 있었기 때문. 알만한 사람은 다알지만 거북선은 이충무공의「창작품」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미 조선조초 태종 때부터「승리의배 귀선」의 기록이 있고, 이후 오랫동안 꾸준히 변형·개조되면서 한국특유의 전선으로 발전해 갔다는 것. 충무공은 이것을 가장 독창적·효율적으로 개조해서 위대한 전공을 남겼던 것이다.
복원작업이 착수된 것은 지난해 5월, 고박대통령 지시에 따라 해군에 거북선복원건조위원회가 조직되면서 부터였다. 제작실무는 7267부대가 맡았다. 설계사들이 옛문헌에 나은 자료를 토대로 기본도면을 작성한후 최영저씨 (국사편찬위원장)등 학계인사들로 구성된 고증위원화의 검토를 거쳐 6월에 착공, 9개월만에 완공했다.
복원된 거북선의 겉모습은 귀두와 2개의 큰돛대, 등쪽 암판위에 입힌 철갑판과 철침, 좌우16개의 노와 24개의 포문이 있는 방패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높이 2.7m, 머리길이 1.4m의 거대한 용두는 판각된 귀두와 함께 부산산업대의 이기주교수가 조각했다.
2개의 돛대, 주범주와 종범주는 놈이 약17m로 길이11m, 폭8m 크기의 황포돛을 달도록 돼있다.
돛으로 항진할 때의 속력은 5∼7「노트」로 노를 사용할 때보다 2배이상 빠르다.
거북의 동만(암판)에는 두께 1.6mm의 검은색 정6각형 철갑만이 1천2백개나 깔려있고 돛대를 중심으로한 십자포로만을 제외하곤 모두 15m크기의 날카로운 철침을 하나씩 갖고 있다. 철침수는 8백40개. 마치 고슴도치 등처럼 적병의 승선을 막는 역할을 한다.
좌우 방패밑으로 8개씩 삐져나온 노의 길이는 8.4m. 2인1조로 노를 젓는다.
뱃속으로 통하는 문은 뱃머리와 꼬리에 각1개, 좌우 방패부분에 각2개씩 6개. 문은 모두 거북이 몸속의 주갑판격인 포판상부로 통한다. 포판은 배의 아래윗부분을 가르는 마루다.

<병졸들 쉬는 방도 19개>
몸통전체를 차지하는 방인 주갑판에서 대부분의 전투·항해활동이 이루어진다. 양쪽가 방패쪽에 선 짝지어선 병정들이 포판바닥의 구멍으로 노를 내려 젓고, 방패에 뚫린 개폐식 포구로 총포를 쏘아댄다. 방패위쪽의 작은 여닫이 쪽문인 여장은 관측과 환기에 쓰인다. 선장과 사관등 장수용방 2개와 키 (타) 도 이 포판상부에 있다.
병졸들이 쉬고 자는 곳은 주갑판 아래 저판부에 있는 군명휴식소다. 3∼4인용으로 조그맣게 간막이된 방이 양쪽으로 19개. 술릉모양의 식수통과 창고·취사소 등도 이 부분에 있다.
주갑판 가운데는 견시를 위한 4개의 조그만 망루인 상포판부가 있다. 이곳에 올라 거복이 등으로 난 개판문을 열면 곧 철갑판 위가 된다.
옛 거북선의 승조원 수는 장수1명과 격수·궁노수·격군등 수군40명. 그러나 최고1백30∼1백50명까지 실을수 있다.
복원이라고는 하지만 4백년전의 실체에 얼마나 접근했는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거북선에 관한 정확한 도본이나 해설이 전하지 않기 때문.
충무공의「난중일기」와「임진상초」등에도 거북선의 건조시기(1592년)와 전투상황만 기록됐을뿐 구체적 규격해설은 없으며 근2백년 후에 발간된 이충무공전서중 이분이 쏜「이순신행록」이나「귀선도설」등에 대체적인 모양과 규격이 나올 뿐이다.

<만명 동원 9개월만에>
따라서 고증도 이같은 단편적 기록들을 짜맞추고 추리하는데 고치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거북선에 관한 터무니없는 과장과 신화, 잘못된「모델」들이 판쳤고 학자들간에도 많은 이론이 있었다. 이번 복원공사에서도 철갑의 존재여부, 철갑·철침의 모양과 크기동이 고증위원간의 쟁점이 됐다는 것이다.
복원관계 고증을 전담하다시피한 조성도씨(해사박물관장)와 7267부대 기술부장은『문헌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원현에 가까이 간것 같다』고 자신하면서도『세부적 자료가 부족하고 옛선박의 제조공법에 생소한 것이 가장 큰 애로였다』고 말한다. 한 방면으로 지난 40년간 한국 목선만을 만들어온 여수의 이봉춘씨 (61) 동 외부의 도목수 10명을 초빙해 복원작업에 도움을 받았다.
이번 복원에서 거북선에 대한 통념을 깬 것은 길이와 폭의 비율 (장폭비) 을 2대1이 아닌 3대1로 해 최근의 정설을 따랐으며 노도 순수한 한국식 노로 만든 것등이다.
특수목재의 구입에도 애를 먹었다. 복원에 든 목재량은 22만5천「보도·피트」(B/F).
나무는 옛날엔 소나무와 삼나무를 많이 썼다고 하나 구하기 힘들어 삼나무 외에 미송·「아피톤」·참나무 등도 많이 썼다.
이렇게 복원에 든 비용은 2억2천만원, 9개월간 연인원 9천7백명이 동원됐다.
진수식을 마친 거북선은 해사부두로 옮겨져 교육및 일반전시용으로 쓸 계획이다. 글=정춘수 기자|사진=김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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