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블랙프라이데이'가 대체 웬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한여름에 난데없이 ‘블랙프라이데이’(연말까지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11월 넷째 주 금요일에 여는 초대형 할인행사)가 등장했다. 소비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유통업계가 최대 성수기인 여름휴가철에 승부수를 던졌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18일 금요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120개 브랜드 60억원어치를 최대 80% 할인하는 ‘바캉스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연다. 지난해 12월 하루 만에 12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7개월 만에 또 여는 것이다. 지난번보다 행사장 규모도 40% 키우고 참여 브랜드 수도 1.5배로 늘렸다. 장수현 롯데백화점 본점장은 “소비심리 회복을 위해 초특가 상품 행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이미 이달 2일까지 일주일 동안 ‘대형마트판 블랙프라이데이’를 표방하며 생필품을 최대 반값에 파는 ‘땡스 위크’ 행사를 열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3주 연속 초대형 행사도 진행 중이다. 홈플러스는 다음 달 13일까지 4000억원어치를 최대 70% 할인 판매하는 ‘대한민국 기세일’을 한다. 역시 역대 최대 규모다. 10억원대 경품, 한 달간 반값 행사, 5000원 이하 제품전 등 각 업체에서 경쟁적으로 내놓은 ‘한여름 유통 대전’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대적인 여름 마케팅은 올해 처음 나타난 기현상이라는 것이 유통업계의 중론이다.

 이마트 이종훈 마케팅팀장은 “휴가철 소비가 늘어나는 한여름(7월 중순~8월 중순)은 설·추석에 맞먹는 최대 성수기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굳이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마트의 경우 한여름 매출이 평소보다 2012년엔 16%, 지난해에는 18% 높았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형마트는 9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이다. 홈플러스 안태환 본부장은 “장기 불황과 소비 위축, 대형마트 강제휴무 때문에 내수가 침체됐다”고 지적했다. 올해도 ‘가정의 달 반짝 특수’가 있었던 5월을 제외하곤 매달 매출이 감소했다. 특히 6월 들어 가장 큰 폭으로 매출이 감소하자 최성수기인 바캉스 마케팅에 전력을 기울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바캉스철마저 매출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성수기 판매에 집중해 상반기 부진을 회복하고 하반기 분위기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동시에 작용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출혈을 감수하고 ‘사장님이 미쳤어요’ 수준의 가격으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절박함 때문에 세일 시기를 예년보다 앞당겨 소비를 유도하는 ‘세일 가불’ 현상도 두드러진다. 한여름 블랙프라이데이가 등장한 배경이다. 현대백화점은 이달 9일까지 모피를 최대 70% 할인하는 행사를 열었다. 통상 모피 행사는 가을·겨울철 신상품이 나오기 직전 재고 상품을 처리하기 위해 8월에 여는데 한 달 이상 빨리 한 것이다. 여름세일 시작 시점에 맞춰 고객을 모으기 위해서다. 이마트도 8월에 하던 여름상품 재고처리 세일을 ‘제철’인 17일 시작한다. 데이즈 여름의류 전 품목 2만원 이상 구매 시 30% 할인 등 추가 할인도 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올해 들어 5.7% 매출이 감소한 패션 부문이 지난달부터는 9.4%까지 하락폭이 커져 패션 부문 소비 촉진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가장 먼저 옷값을 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열대야 때 오후 9시 이후 심야 쇼핑객을 대상으로 하던 ‘야간 반값 할인’ 행사를 지난달 26일에 이미 시작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열대야가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심야시간 고객 매출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들이 초복이 오기도 전에 추석 선물세트 예약 판매에 들어간 것도 ‘38년 만의 이른 추석’(9월 8일)을 핑계 삼아 ‘매출 선점’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다. 가능한 모든 이유를 끌어들여 마케팅에 총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연화 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은 “대대적인 세일로 인해 소비자들이 정상가격에 대해 불신할 수 있고, 행사 때 구입한 재고 상품의 품질에 대한 불만이 오히려 소비심리를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희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