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통령의 연두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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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규하대통령은 18일 금년 첫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전반에 걸쳐 방향과 목표를 제시했다.
최대통령은 최근 격동하는 국제정세와 가중되고있는 경제난동 현실인식을 전제로 하여 올해 시정의 큰 방향을 ①국가안보 ②사회안정 ③국민생활 및 경제의 안정 ④정치발전 등 4가지로 설정했다.
내외여건에 대한 최대통령의 이 같은 현실인식은 대체로 정확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그가 제시한 4가지 시정방향의 설정도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4가지 과제가 별개로 ㅇ열적으로 추진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밀접한 연관 하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개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정치발전문제는 곧 바로 사회안정 문제와 연결되며, 경제안정이 급하다 하여 정치발전을 미룰 경우, 경제안정 역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대통령은 과제의 추진에 있어 안정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했고, 그 자신 소신을 밝히는데 있어서도 그의 중후한 인품대로 딱 부러진 표현을 삼가는 신중한 자세를 시종 견지했다. 안정강조와 신중한 언급이 아마도 회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아니었나 싶다.
최대통령 정부가 풀어가야 할 정치·경제적인 제반문제가 얼마나 크고 어려운 문제인가를 생각하면 이런 문제의 해결은 안정 없이 추진되기 어렵고, 신중한 자세 없이 성공하기 어려움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정부가 최대통령이 보인 문제인식과 신중한 자세로 올해 시정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아가기를 기대하면서 회견내용에 관해 몇 가지 견해를 말하려 한다.
국민의 관심이 무엇보다 집중된 정치발전문제에 관해 최대통령은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원칙적 입장과 당위론을 제시한 편이다.
최대통령이 『…국민의 헌법을 만들어야하고 이를 위해 국민적 합의기반이 넓고 깊을수록 좋다』고 말한 것은 개헌방향에 관한 국민의 희망을 적절히 표현한 것이며, 국정청문회의·헌법개정 심의위 등을 설치하겠다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개헌내용에 관해 정부로서는 아무런 결정도 내린바 없다고 한 발언은 국민적 의사형성을 기다려 반영하겠다는 취지로도 생각되는 말이다.
또 새 정부가 고 박대통령의 잔여임기를 채우지 않으며, 개헌기간을 1년으로 잡는다는 등의 내용을 밝힌 자기의 「11·10 특별담화」를 최대통령이 회견에서「공약」으로 표현하면서 재확인한 것은 정치발전에 관한 확고한 결의를 차곡차곡 실천에 옮기겠다는 것으로 이는 정치발전의 장래에 대해 국민을 안도시키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개헌논의를 정부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국민의사를 어떤 방식으로 수용·반영할 것인지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과, 개헌시한과 일정에 관한 근거제시와 구체적 설명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이런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나 국민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정부관계자라도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밝혀주기 바란다.
최대통령은 아울러 정치과열을 경계하면서 국민의 자제를 촉구했는데 이 발언이 개헌논의와 유관하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경계해야할 정치과열은 오늘의 과도적 상황에서 사리나 당파적 이념만을 취하고자 하는 책동일 것이며, 국민도 냉철한 주시로 이런 책동이 결코 성공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다음으로, 회견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되고 있는 남북문제에 관해 최대통령은 북한이 제의한 남북총리회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한의 이번 제의는 그 저의는 불명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남북한당국간 회담을 갖자는 우리측의 「1·19 제의」에 호응해온 것인 만큼 우리로서도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몇 가지 추찰되는 북한의 저의를 엄두에 두고, 이번 기회를 남북 간의 긴장완화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활용할 대비책을 사전에 면밀히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문제에 관해 최대통령이 물가 안정을 통한 국민생활 안정, 특히 서민가계 보호조치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오늘의 경제현실로 보아 긴요하고 불가피한 정책선택으로 보여진다. 재정의 긴축운영·서민생계대책을 위한 2천억 원 지원, 대중교통요금의 동결 등이 그 구체적인 내용이다.
지난번「1·12조치」로 올해 수출목표 1백70억「달러」가 무난히 달성되리라는 기대가 피력됐지만 고유가시대의 만성적 외환부족에 따른 구조적 악순환을 깨뜨리고, 달라진 여건에 적응할 수 있는 경제 체질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빨리 착수돼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최대통령이 국민의 소비절약을 강조한 것은 어느 때보다 실감 있는 호소이며, 요컨대 더 이상 절약 여지가 없는 소비보다는 호·불황을 막론하고 국민의 눈에 거슬리는 소비「패턴」을 견지하고 있는 일부분의 절제가 함께 강조되어야할 것이다.
이밖에도 최대통령은 외교·노사문제, 사회기강과 서정쇄신 문제, 계엄시기와 언론자유 문제, 사면·복권 문제 등에 관해 소신을 피력했다.
이런 문제들에 관해서도 최대통령은 분명한 언질을 남김이 없이 신중한 답변으로 일관했지만, 그 기조는 합리적이고 온당한 선을 따라 문제해결에 임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최대통령의 회견내용만 갖고 이런 문제들에 대한 정부의 방침을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며, 다만 이 모든 문제에 관해 최대통령정부가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국민여망의 소재와 현실적 합리성을 두 기둥으로 삼아 민주적 방식으로 국정을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후세사가들까지 최대통령 집권기간을 좋게 평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를 당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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