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실리」의 줄다리기 |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둘러싼 미소의 계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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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빚어진 미소의 긴장관계는 지금까지의 평화공존시대를 냉전시대로 역류시킬 우려가 있는 것으로 서방측의 눈에 비치겠지만 소련으로서는 오히려 그들이 추구해온 동서 「데탕트」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사태를 합리화하려 하고 있다. 미소가 서로 상대방의 현실적인 세력권을 인정하고 현재의 세력균형을 깨뜨리지 않겠다는 약속에서 비롯된 동서 「데탕트」의 논리에 비추어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서방측의 입장에서 보면 세력균형을 깨뜨리는 행위가 되고 소련의 입장에서는 자기네 세력권을 지킨다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소련은 이번 「아프가니스탄」 개입의 근거를 78년 12월 체결된 소·「아프가니스탄」 「우호친선 협력조약」의 『유사시 긴급협의』 조항에 따른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협조요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68년 「체코」가 자유화 운동으로 소련의 세력권에서 이탈할 우려가 있자 소련군이 개입하여 서방측이 수수방관하는 사이에 기정사실화 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다.
소련은 이 같은 논리를 내세우며 두 가지 면에서 정책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목표란 제정「러시아」 이래의 남진 및 팽창정책을 계승한 장기적 전략과 「아프가니스탄」의 보수 회교세력의 득세로 있을지도 모를 자국내의 회교도들의 동요를 사전 봉쇄하겠다는 『자기 방위적』인 단기적 전략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의 회교혁명으로 불붙은 회교도들의 종교적 자각이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인접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소련내 5천만 회교도에게까지 번져 「모스크바」 정부에 반기를 든다면 이 영향이 동구제국에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소련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일견 『무모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감행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이 사전에 미국의 반발을 다각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무모하게 행동했다고 볼 수는 없다. 시기적으로 보아 미국은 「이란」문제로 발목이 잡혀있고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어 있어 행동이 제약받게 되어 있다. 소련의 56년 「헝가리」 개입, 68년 「체코」 침공 때도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치렀던 사실을 공교로운 우연으로 보아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직접적인 「응징」을 가할만한 군사력의 우위도 갖지 못하고 있다. 「카터」 미 대통령의 2차 전략무기 제한협정(SALT)의 상원 비준 연기 요청이나 대소 곡물수출 감소조치 등 보복이 소련에 타격을 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련으로서는 SALTⅡ의 비준이 어차피 미 상원에서 제동이 걸려있어 조기 타결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곡물수출량 감소의 경우도 당장은 소련이 괴롭겠지만 오래 계속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계산한 듯 하다.
미국산 잉여곡물의 최대 고객인 소련에 대한 수출이 중단되면 미국의 곡물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골탕먹는 것은 미국 농민이므로 가뜩이나 불황에 허덕이는 미국의 경제형편으로 보아 장기적인 정책은 못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소련의 속셈은 단기적으로는 미소관계가 악화되겠지만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기정사실화 되면 다소 시기가 걸리더라도 두 나라 관계가 회복될 것이므로 「체코」 사태 등에서 그랬던 것처럼 실질적인 이득을 보자는데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입장으로서도 비전시상태에서의 『최강의 웅징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소련군 침공 이전의 상태로 「아프가니스탄」을 원상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원상회복이 어려운 형편이고 보면, 소련을 국제사회에서 도의적으로 몰아붙이면서 가능한 강력한「정치적」 보복조치를 발표하여 월남전 이후 「이란」 사태에 이르기까지 동맹국들에게 무력한 인상을 주어온 미국의 「이미지」를 『강력한 미국』으로 되살리는 호기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SALTⅡ·대소 곡물수출 감소조치 등이 강력한 정치무기이기는 하나 선거를 앞둔 「카터」 행정부를 제약하는 조건들이고 미국이 소련과의 전면대결을 각오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보면 미국으로서는 소련의 입장을 약화시키면서 이번 사태를 「아프가니스탄」의 내부문제로 국한시켜 다른 부문에로의 파급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선에서 결국 미소간의 「데탕트」 논리의 틀 안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군사적 우위에 바탕을 두지 않은 미국의 이러한 소극적 대응은 소련으로 하여금 틈만 있으면 앞으로도 곳곳에서 무력을 앞세워 분쟁을 일으킬 충동을 갖게 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번 사태를 「베트남」 이후의 철군이나 고립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할 계기로 삼아야할 것 같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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