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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광주 공천에 담긴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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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문=정치 쪽으로 간다, 이미 민주당 공천 받고 움직인 거라는 말도 있던데요.

 답=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제가 정치에 몸을 담는다면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배신하고 왜곡하는 일이겠지요.

 2011년 12월 5일 한국일보에 실린 백혜련 전 대구지검 검사의 인터뷰 내용이다. 백 전 검사는 그해 11월 21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린 뒤 사표를 써 언론의 주목을 끌던 인물이었다. 당시 검찰 주변에선 그가 이듬해 총선 출마를 노리고 이벤트를 벌였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백 전 검사는 이처럼 단호히 정계입문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웬걸, 인터뷰를 한 지 한 달 만인 2012년 1월 12일 백 전 검사는 민주통합당의 유력 당권주자였던 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국회에 나타나 검찰개혁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한 전 총리가 당 대표가 되자 백 전 검사는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안산 단원갑 출마를 선언했다. 그때는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이번 7·30 재·보선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장을 쥐고 수원을에 출마했다. 출마하는 거야 개인 자유지만 정치를 하면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던 다짐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건가?

 백 전 검사의 경우는 이번 광주 광산을 재·보선에 새정치연합 후보로 출마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권 전 과장은 나라를 뒤흔들었던 국정원 댓글 사건의 핵심 당사자다. 그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정원 댓글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나라가 얼마나 시끄러웠나? 다른 수사 관계자들은 모두 외압이 없었다고 진술하는데도 혼자만 외압설을 끝까지 제기해서 문제를 여기까지 몰고 온 장본인이다. 그런데 1·2심 재판부 모두 권 전 과장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고 배척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그렇게 난다면 권 전 과장은 헛소동을 일으킨 도의적 책임을 피해갈 길이 없다.

일각에선 위증에 따른 형사적 책임까지 거론한다. 설령 재판부가 권 전 과장의 손을 들어줬더라도 그가 곧장 금배지를 달게 되면 ‘양심선언’은 다소 빛이 바랬을 거다. 포상금을 노린 ‘신고꾼’과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양심선언’은 고사하고 법원이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결했는데도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건 보통의 상식을 뛰어넘는 발상이다. 정 그렇게 정치가 하고 싶으면 최소한 수도권에 출마해 유권자의 심판이라도 거치는 게 순리였다. ‘공천=당선’인 광주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니 새정치연합에서조차 뒷말이 많다.

 뒤집어보면 새정치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는 ‘권은희 광주 공천’을 통해 공직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선거 때 야당에 도움을 주면 확실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제안 말이다. 앞으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때는 얼마나 많은 ‘권은희’가 배출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참으로 대단한 ‘새정치’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