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 앞으로 1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미국이「모스크바」에서「펩시콜라」를 팔기에까지 이른 시류를 외면하고 완고하게 버텨 온 북괴의 폐쇄체제가 80년대에 변화의 징후를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 소위 혁명 제1세대의 자연소멸과 그 빈자리에 충원될 제2세대의 세대교체에서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이 제2세대에로의 승계라는 의미를 가진 몇 개의 「프로그램」이 이미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최근 40년에 걸친 김일성의 통치를 마무리하는 제2차 7개년 계휙은 80년으로 3차년도를 맞는다. 그리고 초년의 제5차 전당대회가 김일성 1인체제 확립의 대회였다면 80년10월에 열리는 제6차 전당대회는 후계체제확립의 대회가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소위 혁명 제2세대의 특징은 단적으로 말하면 금왈성의 인공수유로 자란 세대다.
그들은 사상적으로는「마르크스 레닌」둥 공산주의 상사들의 가르침조차 검열아래에 두는 김일성 주체 사상으로 순수 배양되었고 경험적으로는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지상낙원」에서 산다는 자기도취 속에 자랐다.
혁명 제2세대의 진출을 보면 오극렬읕 정점으로하는 군부의 각급 지휘관이 이들로 교체된 것은 확실하나 확인할 길이 없다.
제2세대의 진술이 표면화된 부문은 78년 초에 출범한 이종왕의 실무경제내각이다. 이 내각 개편에서 21명의 각료 중 11명을 새로 임명했고 그중 10명은 새 얼굴의 신인이었다. 이 신인들은 모두 3대혁명 소조원에서 발탁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그 대표적 인물이 부총리 허태석과 김두영 등이다.
노간부들이 퇴직하고 있는 당 기구에서는 제2세대의 존재가「베일」에 가려 있다. 당비서라는 요직에 있는 김정일의 존재가 아직 공식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예이며 그 밖에도 당 집행기관에는 제2세대가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중견간부로 활약하고 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를 들면 얼마 전까지 평양 「트랙터」 공장 당 책임비서로 있던 조세웅이 요즘 중앙무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것은 중공의 한때의 왕홍문의 경우처럼 제2세대의 도약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제2세대의 활동은 3대 혁명소조운동에서 집약된다. 그들은 이 운동을 통해 생산현장에서 당·행정의 기성간부들에 대하여 사상·문화·기술 분야에서 새바람을 일으키는 별동연 활동에서 실무적으로 면책특권을 향유하며 실무공부를 하고 있다.
그들의 사장은 주체사상이다. 주체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이를 결정한다』는 것.

<좌익소아병 환자들>
그러나 역사사회의 객관적 필요성을 중시하는 공산주의 정통이론에서 보면 인간의 주체적 결정력을 으뜸으로 삼는 주체사상은 이단이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마음 먹으면 될 수 있다는 「테러리스트」 이론. 그래서「레닌」은 당대에 이와 유사한 사장의 당내 일파를 「좌익소아병」으로 진단했다.
김일성의 몸 안에서 소아병을 앓아 온 이들이 80년대의 전환기에 부딪칠 시련을 과연 헤쳐 나갈 수 있을는지는 누구보다 김일성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듯하며 그래서 벌써 세대간의 교량가설에 착수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 사후체제에서 최대의 문제는 역시 후계자 선정문제다. 세계 공산당 지도자 치고 사후에 후계자의 공식비만 또는 격하를 모면한 자는 「레닌」·호지명, 그리고 「디미트로프」 (불가리아) 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역사적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권력을 사물화하여 이를 장자상속시키려는 음모까지 배척하기에 이른다. 김정일 후계설은 뜬 소문이 아니라 확증 있는 정설이다.
79년에는 김정일 후계체제의 공고화를 위해서 후인경쟁에 나설 수 있는 세력권 중 최대세력권인 군부의 지휘권(군총참모부장)을 혁명 제2세대인 오극렬에게 넘겨주어 고참 간부들을 무력화시켰다. 세습제의 강귄적 실현을 위한 이 조치가 있은 뒤에 비로소 열리게 될 제6차 전당대회는 문맥상 김정일 후계 공식화의 자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동안의 권력 악에 대한 역사적 심만이 세습으로 모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시대착오적 음모는 다른 불안요인들과 합께 의외로 큰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북괴는 현재 세계 제5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취약한 경제기반 위에 얹혀진 막중한 군비부담은 오히려 종합적 국력경쟁에서 한국에 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련형 경제는 초기의 양적 발전에서 매우 높은 효율을 보이다가 질적 단계에 이르면 지체되는 것이 통상이다. 북한의 경우는 그 양적 우위조차 충분히 향유하지 못하고 60년대 중반에 이미 7개년 계획(60∼67년)을 10개년으로 연장하는 이례적 조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체 현상을 드러냈다.

<과중한 군비로 파탄>
이렇게 지체현상이 빨리 온 것은 체제상의 불가피성 외에 과중한 군비부담이 그 시기를 더욱 앞당겼다.
그래서 『대포냐,「버터」냐』 하는 고전적 문제가 제기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이런 문제가 일단 제기되면 현재의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체제에 대한 심각한 반성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식층을 사상통제 밑에 묶어 세움으로써 그 기술창조적 활력을 봉쇄하는 체제의 경직성도 지식층을 고려하면 불안요인이다.
추진 중에 있는 7개년 계획이 김일성 치적을 집대성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자폐증의 무거운 증상을 띠고 있는 대외관계에서도 위기를 모면키 어려울 것이다.
북괴의 대외관계는 대중·소 관계와 대 제3 세계관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중소대립이 첨예화되었던 60년대에 자주노선이 처음 제기되었으나 당초에는 역시 중소간을 흔들이처럼 왕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7O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중소에 대하여 친소를 떠난 자유로운 입장에 서려는 흔적이 보인다.
「스칼라피노」교수는 북괴의 친중공화를 견제하기 위해 소련은 최근 북괴에 대한 단유조치를 취했다고 하지만 같은 기간에도 북괴는 예룰 들어「베트남」을 지배주의라고 비난한 점에서 중공과 일치하나 중월전쟁에 대해서는 중공에 무언의 저항을 보였을 뿐 아니라 한만 국경지대에 병력 배치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소련은 북괴에 대한 방문외교에서 중공보다 소속감을 주나 주한미군 철수주장에서는 중공보다 화음이 잘 된다.
제 3 세계에 대한 외교노력의 좌절과 이에 상승하는 남북경쟁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소련과의 유대를 강화하여 군·경 및 기술에서 현재보다 더 많은 협조를 해야 한다는 친소 경향과 중공처럼 목표를 대외적으로 개방한 다각적 국제협조관계를 요구하는 현실주의적 친 중공 노선이 대두할 가능성을 점치는 견해들이 있다.
본래 자주노선이 김일성 l인체제를 견지하기 위해서 친소·친중공세를 배제하려는 것이었음을 생각할 때 김일성 사후체제에서 이런 문제가 재검토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그렇게 되면 북괴지도부는 50년대로 돌아가서 심각한 내부 분열을 일으키게 될지도 모른다.
이와같은 북괴의 내외문제들이 어떻게 풀리는지는 결국 남북관계에 집약적으로 반영되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북괴체제는 완고하게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억제장치를 강화하면서 주변정세에 스스로 적응하기보다는 오히려 이것을 이용하려는데 기본적 특징이 있다. 이런 태도는 남북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월남식 통일 노려>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북괴의 목표 계열에는 주한미군철수를 위한 대미협상, 통일을 위한 남북대화등이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의 대화에서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실현해야 하고 남북대화에서는 통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등 대화의 상봉과 토의내용과 그리고 대화에서 얻을 합의사항까지 일방적으로 정해 놓고 상대방의 무조건 일방적 태도변화룰 끈질기게 추구해 왔다.
이런 주장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군이 철수해버리면 모든 것은 민족내부의 문제, 소위 민족해방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일거에 남한을 석권하려는 전쟁종결시의 월남형 기본도식에서 나온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이 민족해방투쟁에 미국이 부랴부랴 재 개입해도 월남전에서처럼 세계의 여론은 미국을 규탄하고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게 될 것까지 계산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떻든 80년대에는 상대의 변화를 기다리던 남북이 공히 내적 변동요인을 안게 되어 새로운 관계모색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