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이는 공무원 접대경비] 장관급 판공비 '年 1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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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태 정무수석의 '판공비' 발언과 정부의 '3급 이상 공무원 판공비 공개' 추진 방침 이후 공무원 사회에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일선 공무원들의 불평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가 판공비 개편작업에 착수했고, 학계에서는 철저한 사용 내역 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애매모호한 '판공비' 개념=정부예산에서 '판공비'란 명칭은 김영삼 정부 출범 초기인 1994년 없어졌다. 그 전에는 정보비.관서운영비 등과 함께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했으나 당시 김영삼 정부는 판공비.정보비 등을 다 합친 뒤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 두가지로 개편했다.

특수활동비는 사법 당국의 수사에 필요한 경비 등을 말하고, 업무추진비는 ▶일반업무비▶특정업무비▶직급보조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판공비가 '접대성 경비'를 뜻한다면 현행 업무추진비 중 10%가 채 안되는 일반업무비와 특정업무비 중 일부를 '판공비'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판공비는 얼마?=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업무추진비 1년 예산 1조3천억원 가운데 접대 성격의 판공비는 1천1백억원이다. 나머지 1조원이 넘는 돈은 이른바 '사업성 경비'다. 즉 공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와 출장비.회의비 등으로 대부분 지출된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감사원의 감사활동, 국가 신용등급 하락을 막기 위한 재경부의 대외활동 등과 같은 업무에 드는 돈이 한 예"라고 말했다.

판공비는 최소한 국장급 이상이 카드를 사용한 뒤 결제를 신청할 수 있다. 대체로 장관급은 연간 1억원, 차관급은 3천만원 정도 책정돼 있다. 1급은 2천만원, 국장급은 1천만원 가량이다.

그러나 업무 성격에 따라 정부 부처마다 다르고 실.국별로도 차이가 난다. 예컨대 대외활동이 많은 재경부 경제협력국은 다른 곳보다 상당히 많다고 한다.

건교부 항공정책심의관의 경우는 월 25만원 정도만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한 관계자는 "외교통상부처럼 대외 활동이 많은 곳일수록 판공비가 많이 책정된다"고 말했다.

◆불분명한 용도가 문제=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판공비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용도가 불분명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접대비 성격의 판공비는 정부가 국회를 상대할 때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게 중론이다.

한 고위 간부는 "나만 해도 국회의원을 상대로 밥을 사는 경우가 많아 지금의 판공비로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그러다보니 성격이 모호한 업무추진비를 판공비로 돌려 쓰거나 정부 산하기관의 돈을 끌어다 쓰는 경우까지 생긴다는 것.

과천 경제 부처에선 친구나 친지의 돈을 끌어다 썼다가 감사원 감사 등에 걸려 옷을 벗은 사람들도 있다.

정부 부처 총무과장을 지낸 한 국장급 관계자는 "부서 운영비.회의비 등 판공비로 볼 수 없는 돈을 판공비처럼 쓰기도 한다"며 "한 퇴임 장관은 산하기관의 판공비를 쓰다가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접대성 경비가 예산 항목상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다 판공비 용도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대민 접촉이 많은 경제 부처의 한 공무원은 "외부 접대나 공무 수행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없다고 할 수 없다"며 "판공비도 결국 공적인 데 들어가는 돈인데, 사적으로 쓰이지 않도록 규제를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김일섭 부총장은 "미국에서는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식사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돼 있다"면서 "차제에 판공비 내역을 공개하더라도 아주 구체적으로 하고 정부의 판공비 사용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선구.신성식.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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