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선별 아쉬운 해외전시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70년대 중반이후 미술작품의 국내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하고 80년대에 다가서면서 수요의 폭도 한계점에 이르자 시장을 해외쪽으로 확대하려는 미술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 보자면 한국화가의 해외 진출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고 따라서 비판의 소리도 높다. 국내작가들의 빈번한 해외전이 가져다주는 그 씁쓸함과 의구심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우선 화려한「팜플릿」과『한국미술의 세계진출』이라는 명분을 갖고 활발하게 열리는 이 해외전들이 과언 어떤 수준의 화랑에서 어떤대우를 받고 열리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금년 9∼12월에 열렸거나 열리고 있는 해외전중 비교적 알려져있는 작가들의 전시회는▲서양화가 박용순 서화전 (9월21∼10월4일·미국H화랑) ▲하종신유화전 (10월1∼6일·일본 촌송화랑) ▲나상목동양화전 (10월1∼13일·미국 한국화랑) ▲서세옥동양화초대전(10월22∼11월2일· 일본상전화랑) ▲이강소유화전(10월29∼31일· 일본촌송화랑) ▲이명미놀이전 (11월5∼11일·일본 구정화랑) ▲안봉규동양화전 (11월· 미국한국화랑) ▲이명구전 (11윌16∼29일· 미국H화랑) ▲이규선동양화초대전(10월18∼11월10일· 「프랑스」 「자크·마솔」 화랑) 등 10여종을 헤아릴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현지유명화랑의 초대전에 참가했던 화가는 손꼽을 정도며 대부분 자비로, 그 것도 2류급 이하의 대여 화랑이나 교포상대의 한국인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다. 국내작가로는 드물게 일체의 비용을 초대화랑에서 부담해 화제를 모았던 동양화가 서세옥씨는『외국에 나가보면 과연 저런 준가가 있었나 할만큼 전혀 무명의 작가들이「한국 대표급화가」임을 자처하며 전시회를 열고 있어요. 시야를 넓힌다는 점에서는 해외전을 적극 찬성하지만 한국화가로서의 긍지와 실력이 갖추어졌으면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쉽게 해외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현지화랑의 초청장만 있으면 문공부의 추천을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프랑스」 에서는 수천개의 화랑이 있으며 이중 대관료만 내면 언제라도·개인전을 열 수 있는 화랑도 수 없이 많다. 여행도중이나 친지들을 통해 계약을 맺어 초청장을 받고, 이들은 세계화단의 평가를 받기 이전에 눈길조차 끌지 못 하는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다.
지난해 「파리」 에서 개인전을 가졌던 중진 서양학가 P씨는 3류급 화랑에서의 작품도 다 팔리지 않아 교포경영의 「호텔」 식당에 걸어놓고 「성공적인 전시회」 를 가졌다.
『해외전을 가졌다는 경력쌓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알찬 전시회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작가정신이 필요합니다. 내용이 없는 전시회는 오히려 우리 화단을 고립시킨다는 것을 현지에서 느낄 수 있었읍니다. 』 서양화가 임직순씨는 말한다.
문공부에서의 작가추천은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하며 정말 우리나라를 대표할 작가들에게는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미술계의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교민회나 3류화랑의 초청전시회가 빈번한 반면 국제전에 선정된 젊은 작가들이 체재비가 없어 참가를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바로 정부의 미술정책의 모순점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해외전을 둘러싼 이런 잡음은 바로 세계화단에 눈이 어둡기 때문이며 보다 많은 작가들을 해외로 진출시켜야 한다는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7O년대 우리미술계의 한 특징으로 꼽혔던 해외교류전이 80년대에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작가·작품선정이 보다 철저해야 하겠다.<이재숙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