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가족 “진상조사 특위에 기소권을” … 정치권선 난색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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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피해자가족대책위 김병권 대표(오른쪽 셋째)와 가족들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3자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여야가 오는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반발이 거세다. 입법과정에 참여시켜 달라는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고 있어서다.

세월호특별법은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에서 조속 입법에 합의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11일에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사건조사 및 보상에 관한 조속입법 태스크포스(TF)’도 구성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정치권이 입법과정은 물론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에서도 가족들을 배제하려 한다”며 국회 주도의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 모임인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진상조사 특위에 강제조사권과 기소권까지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치권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피해자 가족 90여 명은 12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했다. 이날 오후에는 대책위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가족버스 전국순회 보고대회’를 열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대규모 도심집회를 피해자 가족들이 직접 주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별법 TF에 가족들 참여도 불투명
정치권은 “특별법 TF가 피해자 가족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법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TF가 가족들의 주장대로 진상조사 특위에 강제조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고 가족들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 2일 새누리당 김학용(안성) 의원은 세월호 피해보상 및 진상조사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4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안산 상록갑) 의원이 또 다른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두 법안 모두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우선 진상조사 특위 구성에서부터 의견 차가 크다. 대책위 측은 위원장을 피해자 가족이 추천한 인사가 맡고, 위원도 국회와 피해자 가족 추천인사를 동수(각 8명)로 구성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 의원 안은 국회의원 10명과 국회 추천인사 6명, 피해자 가족대표는 4명만 참여하도록 했다. 전 의원 안도 국회 추천인사 12명과 피해자 가족 추천인사 3명으로 구성했다.

진상조사 특위의 권한에 대해선 온도 차가 더 크다. 대책위는 특위에 강제조사권과 수사권·기소권까 지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김 의원 안은 강제권한을 부여하는 데 소극적이다. 전 의원 안은 형사소송법에 준하는 수사권을 주도록 했지만 기소권한에 대해선 국회나 법무부 장관에게 특별검사 임명을 요구하도록 했다. 지난달 19일 발효된 이른바 ‘상설특검법’과 연계하자는 주장이다.

정치권에선 특위에 기소권을 준 전례가 없고, 현 형사법 체계를 훼손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기류가 팽배하다.

김학용 의원은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의 권한인데 일반인을 참여시키기는 어렵다”며 “강제조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도 법 체계상 어려울 것 같다”며 난색을 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도 법조인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진상조사 특위에 기소권까지 부여하는 것은 헌법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가족들은 지난 10일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만든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했다. 여야가 만든 특별법안 대신 피해자 가족 의견을 담은 별도 법안을 제정해달라는 것이다.

법안에서 가족들은 진상조사 특위 상임위원에게 검사의 지위를 부여해 강제조사권과 수사권·기소권까지 갖도록 했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훼손 논란을 피하면서 실효성 있는 진상규명이 가능하게 하려면 상임위원에게 검사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안을 마련한 대한변협 박종운 변호사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지금까지 수많은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선 특별검사처럼 자격을 갖춘 특위 상임위원에게 검사 지위를 부여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 “집단행동” … 12일 도심 집회
법조계에선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인사는 “기소독점주의의 예외인 특별검사가 가능한 것은 ‘수사의 보충성’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한 사안 중에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경우에 한해 보충 수사를 한다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형사처벌을 전제하는 사법행위인 수사와 기소는 사법시스템 내에서 이뤄져야 하며 피수사자가 공정한 수사를 받을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구성한 특별위원회에 기소권을 부여한 전례는 건국 직후 활동했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유일하다. 당시 국회는 반민특위에 특별재판부와 특별검찰부를 둬 독자적인 기소권과 재판권 행사가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해방정국의 혼란과 당시 이승만 행정부의 비협조로 특위 활동은 유야무야돼버렸다.

법 논리를 앞세운 정치권과 법조권의 주장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지난 10일 특별법 입법을 위해 여야와 피해자 가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정치권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정조사 특위에서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조류인플루엔자(AI)에 비교한 것도 가족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김병권 대책위 대표는 “현재 국회의 특별법 입법논의는 피해자 가족을 무시한 행태”라며 “이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12일 청계광장 집회를 시작으로 가족들도 집단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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