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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초상앞에서 역사의 증언을 듣는다|국립박물관의 한국초상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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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역사의 온갖 영욕을 함께 한 우리의 조상들이 한데 모여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얼굴표정 하나하나에, 더럭 한가닥 한가닥에 한 인간의 모두가 담겨져 있다. 무상한 1천년 시대의 변화를 제각기 승인하는 모습들이다.
2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된 한국초상화 특별전시회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하다.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그림속에서 되살아나는 역대왕·명현·고승, 그리고 여류들의 행적·인간성과 제각기 대화하고 있다.
11월 25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에 나온 초상화는 모두 1백50점. 1백49인의 생전의 모습을 그린것들로 가장 오랜 인물로는 고려때의 안향·이조·정몽주로부터 최근세는 대원군·의병장 최익현·유학자 전우에 이르기까지 저명인사들을 웬만큼 짚어볼 수 있다. 출품된 작품은 거의 국립중앙박물관의 비장품들.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1백여점의 유·무명 초상화를 비롯해 문화재관리국이 창덕궁에 보관하고 있던 영조의 초상과 민간의 거탁품 4점 등이 새로 선보였다.
가장 이채를 띠고 있는 초상화는 조선의 개국공신 조간과 조간부인상. 똑같이 비만에 채색된 71.4×91㎝ 크기의 족자초상화인 이 2개의 초상은 생전의 부부금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란히 걸려 있다. 백천조간(1341∼1401)은 고려의 시관으로 있다 이성계를 도와 이조를 세우는데 공헌한 인물. 관복의 위엄과 흉배의 현란함이 당시의 위세를 짐작하게 한다.
또 부인의 초상화에 나타난 복장은 조선 초기의 독특한 「스마일」을 보여줘 복식사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같다.
왕으로부터 사대부에 이르는 상류층이 중심이된 이들 초상화속에 여류는 단 2점. 조반부인외에 홍경래난때의 의기운낭자의 모습이 보일뿐이다. 조선 초기까지 있었던 여인초상이 왜 중기 이후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도 이번 초상화전시를 보는 관람자에게 흥미거리다.
또 초상화의 기법상으로도 이조(16세기전) 전기와 후기의 뚜렷한 구본을 볼 수 있다. 우리 나라 사람이 그린 것으로 연대가 가장 오랜 조말생과 아버지 조의의 초상화에서 전기초상학 양식의 전형을 본다. 색채의 농담을 대범하면서도 엷게 가려써서 은근히 회화적인 효과를 거두는 방식이다.
후기에는 윤두서·이체·최철현의 초상처럼 정세한 필선으로 얼굴의 정기를 빼어나게 표현하는 「전압」의 수법으로 바뀐다.
회화사에 있어서의 변화가 초상화에서도 그대로 투영된 느낌이다.
이 같은 수법의 변화는 초상을 그린 화가들의 성격변화에서도 기인한다고 관계자는 귀띔한다.
초기에는 안견·최경·이흥효·이상좌 등 뛰어난 산수화가들이 초상화도 겸했음에 반해 후기에는 윤두저·이재관·변상벽·이한철·이명기 등 전문 초상화가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란 풀이다. 어쨌든 이들 화가의 섬세한 묘사로 전해지는 당시의 「인물」속에서 미술사에 대한 「안목」과 함께 역사의 무게가 주는 감동도 느낀다.
최정우 관장은 전시회를 마련한 뜻도 『우리들 스스로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떠한가의 실마리를 과거 우리 조상들의 수많은 얼굴속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된다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도량있고 깔끔하고 슬기롭고 또 염치와 지조를 분명히가면 우리 조상의 인간성을 되새겨 무엇이가를 얻어내자는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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