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트·패신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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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외여행 중에 한가지 즐거운 일은 예정에 없던 곳을 들르는 일이다. 더구나 그곳이 「트랜지트」국일 때는 색다른 인상을 갖게 된다.
「트랜지트」란 「비자」(입국사증)없이도 잠시 입국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레저」시대에 여행자유화바람마저 불어 요즘은 모든 나라들이 「트랜지트·패신저」를 받아들인다. 「통과여객」이라고 할까. 그런 입장이 된 입국자는 입국「카드」(엠바케이션·카드)의 도항목적란에 「TR」이라고만 적으면 그 자리에서 입국허가를 내준다.
물론 머무르는 기간은 길지 않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들를 때는 1백20시간을 「트랜지트」로 묵을 수 있다. 인도와 같은 나라는 무려 30일의 터울을 주지만 우리나라도 짧은 편은 아니다. 「필리핀」은 21일, 「홍콩」은 7일, 「말레이지아」는 14일, 흔히는 72시간이다. 공산국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아무래도 배타적이다.
「트랜지트」규정이 이처럼 물렁해지면서 항공회사들은 색다른 상혼을 발휘하고 있다. 한때는 왕복권을 끊으면 그 「코스」안에 포함되는 적당 지역의 기착요금을 면제해 주었다. 서울서 「파리」를 왕복할 때는 「로마」나 「런던」·「프랑크푸르트」등은 별도요금을 내지 않고도 들를 수 있었다. 물론 떠날 때 미리 그런 「티케팅」을 해놓으면 불편없이 유람할 수 있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동경에서 「유럽」을 갈 때 일부러 「모스크바」경유선을 선택하는 예가 있다. 시간절약의 혜택도 있지만 「모스크바」에 내리는 호기심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역시 공산권이어서 「비자」없이 공항 밖을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쪽 사람들의 으시시한 눈총을 받지 않게 된 것만 해도 큰 변화임엔 틀림없다.
요즘은 우리나라의 KAL도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트랜지트」여객들들 많이 모아들이는 것 같다. 언젠가는 「홍콩」에서 미국「로스앤젤레스」로 가려는 사람들이 KAL기를 타고 잠시 서울에 내린 일이 있었다. 한두 사람도 아닌 만원으로. 이들 중엔 서울에 들르는 기분을 만끽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KAL국제선 승객의 50%가 「트랜지트·패신저」라고 한다.
주로 동남아와 미주 또는 「유럽」을 오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자」없이도 유유히 서울관광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즐거운 비명」도 없지 않다. 아마 김포공항에 나가본 사람은 그 비명을 누구나 실감했을 것이다. 비좁고, 시끄럽고, 번거롭기 짝이 없다. 이제 중공을 넘보는 외국항공회사들의 「러시」마저 겹치면 앞으로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손색없는 국제공항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숨막히는 공항대합실을 보면 하루가 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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