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5백 만원 모아 고향 찾는「여공의 추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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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 여공이 허리띠를 졸라매 저축한 5백 만원의 저금통장을 갖고 추석을 맞아 6년만에 고향을 잦는다.
서울 구로 공단「싸니」전기 검사과 이태임 양(24)-.
이 양은 그동안 연탄불·이불 없는 싸늘한 셋방에서 지내며 낮일이 끝나면 부업을 해 목돈을 모았다.
이 양은 앞으로 4년 동안 다시 5백 만원을 모아 l천만원이 되면 공원생활을 청산하고 조그마한 가게하나를 갖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이양은 국민학교 2학년 때인 64년 어머니를 여의고 국민학교를 졸업(69년)하자 야간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대구 고모 댁으로 갔다.
서울로 온 것은 73년, 시집간 언니 순임씨(31)가 아기를 낳았으니 도와 달라고 해 상경, 언니와 상봉했다.
이양은 그해 언니 집에 기거하면서「싸니」전기에 공원으로 들어갔다. 한 달이 못돼 형부가 부산으로 직장을 옮겨가는 바람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회사에서 점심을 종업원들에게 제공하지 않아 점심을 3개월 정도 굶었다. 도시락을 싸 갖고 다녀야 하는 회사규정 때문에 이양은 빈 도시락을 들고 다니며 정문에서 도시락 검사를 속임수로 받았다.
첫 월급 2만원을 받은 날 이양은 방 값과 식비를 빼고는 전액저축해서 10년 안에 1천 만원을 모으기로 마음을 먹었다.
「캐시밀론」이블 하나로 불기 없는 방에서 겨울을 지냈다.
이양은 쥐꼬리만한 월급만으로는 저축목표달성이 어렵다고 생각, 퇴근 후에는 가발 만들기를 부업으로 시작했다.
밤을 새우며 가발을 만들어 한 달에 1만5천 원의 부수입을 얻었다.
74년 5월 이양은 50만원을 모았다. 주인 아주머니를 통해 이자를 놓았다. 헌 옷가게를 뒤져 질긴 바지를 골랐고 검은색 운동화를 애용, 구두 한 켤레 사지 않았다.
이 양은 5백 만원이 든 저금통장을 5개로 나눴다. 혹시 분실하면 어쩌냐는 걱정 때문이었다. 회사가 마련해 준 귀성「버스」를 타고 4일 어머니 묘소에 성묘 가는 이양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이석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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