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마케팅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전세계 70억 명이 지켜보는 월드컵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업도 선수들만큼이나 사력을 다해 뛴다. 최근에는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사용자도 크게 늘어 경쟁은 더 뜨거워졌다.
그러나 실질적이고 합법적인 월드컵 마케팅은 국제축구연맹(FIFA)을 후원하는 극소수 기업만의 특권이다. FIFA는 2006년부터 후원사 사이에도 등급을 매기고 분류해 기업의 권리를 철저히 보호한다. 아디다스(스포츠 용품)를 비롯해 현대-기아차(자동차), 코카콜라(음료), 소니(전자기기), 에미레이트항공(항공), 비자(카드) 등 6개사는 매년 FIFA에 막대한 마케팅 권리 금액을 지불하는 최상위 후원사(FIFA 파트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최상위 후원사가 각각 FIFA에 지불하는 비용을 연간 2500만~5000만 달러(약 252억~505억원)로 추정했다.) 그 밖에 맥도날드·캐스트롤 등 월드컵 대회에 한해 독점적 마케팅 권한을 갖는 월드컵 스폰서, 월드컵 개최국 내 기업이 마케팅 권한을 갖는 국내 서포터가 있다.
천문학적 금액을 내는 만큼 스폰서의 권리도 확실하다. 월드컵 경기장 안에서 코카콜라를 제외한 타사 음료는 일절 판매 금지다. 신용카드는 비자카드만 사용할 수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FIFA는 앰부시 마케팅(공식스폰서인 것처럼 위장해 소비자의 시선을 끄는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단속해 글로벌 시장에서 451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아디다스· 나이키·푸마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는 각 대표팀뿐 아니라 선수 개인을 공식적으로 후원하며 간접적으로도 월드컵에 참여한다. 팀 승패와 선수들 활약에 따라 스포츠 브랜드의 희비도 엇갈린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디다스는 650만 개의 유니폼과 1300만 개의 공인구를 판매했다. 삼선 줄무늬 옷을 입고 우승한 스페인도 판매에 한 몫 단단히 했다. 1970년 멕시코 대회부터 월드컵과 인연을 맺은 아디다스는 브라질 월드컵 기간 동안 연초에 목표했던 축구 제품 연 매출 20억 유로(약 2조7511억원)를 조기 달성했다.
하지만 월드컵 마케팅을 통해 얻는 더 큰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FIFA와 44년 동안 관계를 이어온 덕분에 아디다스는 축구 분야 최고의 브랜드로 소비자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아디다스는 이미 FIFA와 2030년까지 공식 파트너 계약을 연장했다. 또 코카콜라는 1978년부터 36년째 비알코올 음료 부문 공식 파트너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9년부터 자동차 부문 공식 파트너로 있는 현대-기아차도 2022년까지 FIFA와 계약을 연장했다.
스포츠 마케팅은 물건을 더 많이 판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마케팅을 통해 해당 분야 최고의 브랜드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줌으로써 누구나 갖고 싶어하도록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는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도 연결된다.
맥주 브랜드 카스는 미국 기업에 인수되면서 ‘FIFA 월드컵 공식 맥주’라는 타이틀을 사용했다.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는 소비자와 강력하게 소통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내 기업들이 최근 들어 월드컵을 비롯한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강형근 아디다스코리아 상무·중앙일보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