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범이 전과 20범과 한 방 생활 … 범죄 배워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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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21일 광주소년원 생활지도실 모니터에 있는 각 생활실 모습. 바닥 면적 15㎡ 정도인 오른쪽 제일 아래 18호실과 그 왼쪽 17호실에는 10명이 앉아 있다. 원래 정원은 8명인데 들어온 인원이 넘쳐 원생들은 좁은 공간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생활해야 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해 5월 5일 오후 7시 부산 소년원(오륜정보산업학교). 실습실 한쪽에서 “이 ××”하는 욕이 터졌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자동차 정비를 배우는 원생들과 헤어 디자인을 배우는 원생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 판이었다. 서로 기분 나쁘게 노려봤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충돌 직전에 직원들이 원생들을 방으로 돌려보냈지만 소란은 이어졌다. 철창과 문을 흔들며 욕설을 퍼부었다. 난동은 30분가량 이어지다 교사들의 제지와 설득에 가라앉았다. 만일에 대비해 출동했던 경찰 390여 명은 오후 10시35분까지 대기하다 철수했다.

 당시 부산 소년원에는 정원 130명보다 58명(45%) 많은 188명이 있었다. 부산 소년원 측은 “방이 좁아 잠자다 뒤척이면 어깨가 부딪치는 바람에 잠에서 깰 정도였다”며 “이런 생활에 극도로 예민해진 아이들이 사소한 일에 분노를 터뜨린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소년원은 지난해 하루 평균 수용인원이 정원을 37% 초과할 정도로 수용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당시 예산이 없어 시설 확충은 꿈도 못 꿨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 난동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옛일을 반성하고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인성·직업 교육과 상담 역시 재원이 부족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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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광주 소년원(고룡정보산업학교)의 자동차 정비 실습실에선 13명 원생들이 자동차 엔진과 관련한 실습을 했다. 하지만 실습용 4대의 엔진 중 2대는 고장 난 상태였다. 그나마 작동하는 엔진 2대는 기능대회에 출전하는 학생 2명 몫이었다. 나머지 11명은 실제 돌아가지 않는 모형 엔진 앞에서 타이밍 벨트 설치 등 간단한 기술을 익혔다. 그러곤 의자에 앉아 기능대회에 나가는 2명이 연습하는 것을 구경하며 잡담하는 게 전부였다.

국내 10곳 소년원 중 부산 소년원과 함께 명색이 ‘직업 훈련 특성화 시설’이라는 광주 소년원의 현실이 이랬다.

 같은 시각 운동장에서는 소형 건설기계 수업이 이뤄졌다. 굴착기 1대에 20여 명이 번갈아 올라가 흙을 퍼서 옆으로 옮기는 실습이었다. 석현철(19·가명)군은 “하루 꼬박 실습을 해도 15분 굴착기 운전을 해보는 것이 전부”라며 “굴착기에서 내려오자마자 실습한 내용을 다 까먹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실습도 천편일률적이다. 자동차정비·헤어디자인·제과제빵 일색이다. 서울 소년원(고봉중·고)의 사진영상과 한식조리, 제주 소년원(한길정보통신학교)의 골프 매니지먼트(장비 수리·관리) 정도가 독특할 뿐이다. 이찬석(19·가명·부산 소년원)군은 “음악을 배우고 싶은데 방도가 없다”며 “소년원에서 가르쳐주는 건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년원에선 같은 직업 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같은 방에 배정하는 게 보통이다. 이를 기준으로 비슷한 또래가 한 방에서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과 20차례 이상 전과가 있는 아이들이 한 방에서 생활하는 게 다반사다.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지른 다중 전과 소년범들이 “소년원에서 새로운 범죄 수법을 배웠다”고들 하는 이유다.

“소년원에서 처음 방을 배정받으면 신고식 비슷하게 자기 소개를 한다. 그때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무용담을 얘기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다른 범죄를 배우게 된다. 나는 단순 절도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인터넷 사기 등을 배워 나와서 또 범죄를 저지르다 다시 소년원에 갔고 결국 소년교도소에까지 왔다.”(이동철·20·가명·김천소년교도소)

 소년교도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직업 교육반별로 방을 쓰다 보니 문이 열린 차량에서 돈을 훔친 아이가 살인을 저지른 아이와 함께 지내기도 한다. 반면 성인들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아예 가는 교도소가 다르다.

 상담을 통한 인성 교육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력이 부족해서다. 교사들이 야간 당직을 서고도 일손이 모자라 다음날 정상 근무를 해야 할 정도라고 소년원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명지대 이종훈(법학) 교수는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소년원과 소년교도소가 교정과 교화라는 본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그저 원생들을 가둬두는 수감기관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강진령(교육대학원) 교수는 “예산이 모자란다면 은퇴한 전문 상담사 인력은행 같은 것을 만들어 소년원에서 재능기부 자원봉사를 하도록 유도하는 게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별취재팀 위성욱(팀장)·신진호·최경호·최모란·윤호진·이정봉·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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